최근 1900년 초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될 무렵, 우리나라를 촬영한 동영상을발굴하여 방영한 것을 보게 되었다. 시골 풍경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서울의 모습, 활동 사진기를 보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이미 연로하여 작고하였을 분들이겠지만), 신문물이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초기 모습들, 한 장면 한 장면 뜻깊고 인상적인데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웃는 표정이었는데,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다소 낯설게 여겨질 정도였다면 내 느낌이 좀 과한 것일까? 일시적으로 웃어 생긴 것이 아닌, 항상 웃어 생긴 웃음 주름이 보인다. 힘들 만도한데 함께 농사짓는 모습에서 환한 웃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식적이지 않고 연출돼 보이지 않는 웃음 말이다.
드물지 않게 한국사람들은 표정이 없을 때는 화난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봐도 무표정한 사람들의 모습은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닌, 화난 것 같은 잔뜩 찌푸린 듯한, 때론 근심과 걱정이 서린 얼굴들이다. 그래서 우린 자주 서로 "무슨 일 있어?"라고 묻고 "아니 왜?"라는 답변을 듣곤 한다. 최근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평온하고 미소 짓는 일상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백 년 전 활동사진에서 우리의 조상들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 낯익은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나로 하여금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웃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얼굴의 미소는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물론 지금도 우린 웃는다. 때론 박장대소하여 웃고, 웃음소리가 창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웃을 일이 있을 때에만 말이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회의 중에 환한 미소를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학생이라면 수업 중에 환한 미소를 본 적이 있는가? 코로나로 마스크가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다 시인할 것이다.
아마도 서너 페이지 넘게 웃음이 사라진 이유를 적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하지 않더라도 우린 다 느끼고 알고 있다. 이 웃음이 사라진 이유를 말이다.기쁨의 샘이 마르게 한 이 시대 이 세상의 도도한 흐름 가운데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아니, 이미 우리 다음 세대들에겐 늦었는지도 모른다. 다 다음 세대에겐 이런 환한 미소를 되찾게 해주고 싶다. 서로를 바라볼 때 평온하고 웃는 얼굴로 대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말이다.
사도행전 2:28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저에게 알려 주셨으니, 주님의 임재로 저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