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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Nov 17. 2021

웃음 잃은 백 년 세월

 최근 1900년 초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될 무렵, 우리나라를 촬영한 동영상을 발굴하여 방영한 것을 보게 되었다. 시골 풍경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서울의 모습, 활동 사진기를 보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이미 연로하여 작고하였을 분들이겠지만), 신문물이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초기 모습들, 한 장면 한 장면 뜻깊고 인상적인데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웃는 표정이었는데,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다소 낯설게 여겨질 정도였다면 내 느낌이 좀 과한  것일까? 일시적으로 웃어 생긴 것이 아닌, 항상 웃어 생긴 웃음 주름이 보인다. 힘들 만도 한데 함께 농사짓는 모습에서 환한 웃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식적이지 않고 연출돼 보이지 않는 웃음 말이다.


 드물지 않게 한국사람들은 표정이 없을 때는 화난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봐도 무표정한 사람들의 모습은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닌, 화난 것 같은 잔뜩 찌푸린 듯한, 때론 근심과 걱정이 서린 얼굴들이다. 그래서 우린 자주 서로 "무슨 일 있어?"라고 묻고 "아니 왜?"라는 답변을 듣곤 한다.  최근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평온하고 미소 짓는 일상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백 년 전 활동사진에서 우리의 조상들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 낯익은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나로 하여금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웃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얼굴의 미소는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물론 지금도 우린 웃는다. 때론 박장대소하여 웃고, 웃음소리가 창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웃을 일이 있을 때에만 말이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회의 중에 환한 미소를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학생이라면 수업 중에 환한 미소를 본 적이 있는가? 코로나로 마스크가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다 시인할 것이다.

 

 아마도 서너 페이지 넘게 웃음이 사라진 이유를 적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하지 않더라도 우린 다 느끼고 알고 있다. 이 웃음이 사라진 이유를 말이다. 기쁨의 샘이 마르게 한 이 시대 이 세상의 도도한 흐름 가운데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아니, 이미 우리 다음 세대들에겐 늦었는지도 모른다. 다 다음 세대에겐 이런 환한 미소를 되찾게 해주고 싶다. 서로를 바라볼 때 평온하고 웃는 얼굴로 대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말이다.


사도행전 2:28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저에게 알려 주셨으니, 주님의 임재로 저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참고]

KBS 시청자 주간 특집, 현대사 아카이브 발굴 프로젝트. 김씨네 이야기

https://vod.kbs.co.kr/m/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20-1461&program_id=PS-2020144476-01-000&broadcast_complete_yn=null&local_station_code=00

KBS 독일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 100년 전 조선을 촬영하다.

https://youtu.be/CPEAifC4zsQ

체코인 브라즈가 본 1901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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