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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Oct 02. 2022

인생은 고해(苦海)이기만 한 것일까?

 우리의 자녀들 세대는 지금까지 살면서 듣고 본 것들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근거하여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결혼하더라도 자녀는 갖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하곤 하는데, 그들에게 괜찮으니, 삶은 살만한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결혼하고 자녀낳고 양육하라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아니, 우리 후대는 두 번째라 치고라도, 우리 자신은 남은 인생의 여정을 기쁘게 열정적으로 살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고난과 고통의 환경들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흔치 않을 터이고, 어떤 경우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힘든 환경을 만난 경우도 드물지 않은데, 우린  우리의 남은 인생의 여정을 기꺼이 달려가고자 하는가?


 어느 날 문득 위와 같은 질문들이 내 마음에 떠 올랐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살아온 시절보다 살아야 할  인생의 여정이 더 길게 남은 시점이든,  여생이 그다지 남지 않은 시점이든 '이 길을 가는 것이 고통스러움 뿐이고 낙이 없고 암울하기만 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천지를 지으시고 우릴 지으신 하나님께서 실패하신 분이시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생을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나날뿐이므로 낙이 없다는 말이 맞다면, 암울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도록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니 신께서 잘못 창조하신 것 아닌가? 하지만 인생의 고난과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의 남은 일생도 계속 어려움만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어려웠던 시간만이 나의 남은 일생 동안에도 지속될 것이 라면 암울하기만 하고 더 살 소망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나에게 왔던 고난이 우연인가 아니면 어떠한 원인이 있었는가? 우연이라면 앞으로도 그런 고난은 또 불현듯 올 수 있을 것이고, 그 빈도가 매우 높을 것이라면 소망을 갖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어떤 원인이 있다면, 그리고 그 원인을 제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소망을 갖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잠언 19:3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어 길을 망치고서 마음속으로 여호와께 화를 낸다.


 많은 경우 사람이 어리석게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필요도 없이 어리석음의 결과로 고난이 오기도 한다. 며칠 전 잠이 오지 않아 잠자리에 스마트폰을 한 시간 넘게 본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목 주위가 아프고 어지러운 증세가 생겨 약간 메스껍기까지  하였다. 나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온 일이었다. 이 예는 내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나의 어리석음이었지만 어떤 일들은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어리석게 행함으로 그 영향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게 된다.


 나의 어리석음이 야기한 고난의 환경 이외에도 삶의 원칙에서 벗어남으로 인하여 오는 고난이 있을 수 있다. 이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야기된 어려움이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들입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떠나서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위 성경 구절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주 예수님의 가지들이며 가지인 우리는 포도나무와 정상적인 관계에 놓여 있을 때, 그 나무로부터 오는 풍성한 생명의 연결 안에 거할 때 가지로서의 모든 누림과 열매 맺음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러클 보이에서 언급한 바 있었는데 사람은 하나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떠나는 것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참된 믿는 이들은 쉽게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지 않는 다면 우린 인내할 수도, 참되게 사랑할 수도, 의로운 삶을 살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면 결국 우린 공허하게 되고 무기력하게 되며 우울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어떤 고난과 어려움은 민족이나 국가 단위로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나의 개인적인 문제는 아닌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을 주실 때에 경고로 주인 말씀을 보기로 하자.


신명기 4:22-29... 여호와 그대의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만들지 말라고 하신 우상을 그 어떤 형체로도 만들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십시오.... 어떤 형체로든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를 부패시키거나 여호와 그대의 하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하여 그분의 진노를 사면,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여러분에 대한 증인으로 불러 세우거니와 여러분은 요단강을 건너가 차지할 저 땅에서 반드시 곧 멸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백성들 가운데 흩어 버리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민족들 가운데로 쫓아 보내실 터인데, 거기서 살아남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분을 마음에 두길 싫어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대치한 것을 사랑하고 마음에 둘 때, 그 백성에게 환란의 환경을 허락하신 다는 것이다.


 올여름 유럽에 유난히 자연재해가 급증하였고 영국에서도 유래 없는 폭염이 지속되고, 유럽 각지에 산불이 큰 규모로 발생한 뉴스를 접하면서 내게는 이 일이 매우 이상히 여겨졌다.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그 원인으로 주목하였지만 왜 유럽에 이렇게 그 재난이 더할까? 결과론적으로 기상학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온 것을 설명할 수 있지만 왜 그 현상이 유럽에 어려움을 주도록 전개되게 발생하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여겨져 유럽의 기독교 상황을 조사해 보았는데  놀라운 것을 발견하였다.  기독교를 근간으로 세워진 근대 유럽 각국이 그 신자들의 수가 근 들어 현저히 줄어들고 있고 이로 인해 성당이, 예배당이  팔려나가 심지어 술집으로, 나이트클럽으로 바뀐 경우까지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날 때, 하나님을 마음에 두길 싫어할 때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그들을 붙들어 주는 손을 놓으시면 자연재해든 초자연적 재해든 환란의 환경들이 임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을 읽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 마무리해보자. 많은 경우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어려운 환경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기인하였거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았거나 한 국가나 민족이 보편적으로 하나님을 저버린 결과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것을 깨달았다면 우린 돌이키고 우리와 우리 민족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그분의 크신 긍휼을 구하며 우리를 구원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어떤 경우 우린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야만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될 때 모든 문제들은 우리의 발아래 있을 것이고 우린 복락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열정적으로 우리의 남은 일생을 진하게 살자. 의미 깊고 진지하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삶의 한조각도 귀하게 여기며.


참고: 유럽 교회의  몰락- https://youtu.be/dy3GfWnzn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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