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무 Sep 01. 2020

마이크로바이옴

 간혹 언론을 통해 우리 손에 미생물이 놀랍도록 많다든지, 스마트폰에, 변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들어가는 얼음에, 식기에 발견되는 세균들의 수를 제시하며 당장 큰일이 날 것 같은 기사들을 읽곤 한다. 메르스와 코로나 19 이후 미생물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곱지 않다. 미생물은 인류의 적으로 사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어휴, 이 세균덩어리’ 이런 표현은 상당히 상대를 경멸하는 표현이다. 물론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체들은 인류의 공적임에 틀림없다. 병원성 미생물들에 대해 철저히 알고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미생들과의 전쟁은 용이하지 않으니, 우리 몸의 면역 저항성을 유도하는 백신의 도움을 받는 것이 최상이고, 어쩔 수 없이 병에 걸리면 항생제나 항바이러스 제제의 도움을 받는 것이 그 다음이고, 이도 저도 없으면 충분히 쉬면서 자신의 면역체계로 이길 수 있도록 보존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 그 다음 방법이다.


 그런데 이 미생물들이 해롭기 만한 것은 아니다. 최근 의학의 발달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미생물군유전체)이란 개념이 밝혀지게 되었고, 나름대로의 생태학적 환경 속에 인류와 미생물군 간에는 공생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여러 가지 질병의 발생이나 영양, 대사의 이상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마이크로바이옴이란 어떤 생태계에 존재하는 미생물들의 유전자의 총체를 일컫는 말이다. 이 정의가 다소 생소하다. 미생물군의 총체 하면 ‘아, 세균덩어리’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텐데 ‘유전자의 총체’라 하니,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싶다. 과거 세균에 대한 연구는 주로 배양을 해서 자라나 온 세균들에 대해 어떤 세균인지 밝혀나가는 작업을 통해 특정 세균들을 인식해왔다. 그런데 새로운 연구 방법은 미생물을 배양하지 않고도 미생물들 총체에 대한 유전자에 대한 분석이나 단백질 구성성분들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그 집합적 미생물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기술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유전자들은 어떤 기능을 하는 정보들을 갖고 적절한 조건에 따라 해당 단백질들을 생성하여 특정 기능들을 나타내게 되므로 더욱 미생물군유전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인체의 장관계에는 천만에서 일억 개 정도의 세균들이 살고 있으니, 스마트폰에 몇 만 마리 세균이 살고 있다는 뉴스만으로 너무 놀라지 말자. 이러한 장관계에 공생하고 있는 세균들은 우리의 몸의 면역체계를 조절하고, 소화기관 내 호르몬 조절, 비타민 합성, 신경전달물질 생성, 독성물질의 배출 등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한다고 한다. 이 세균총의 건강한 균형이 깨지게 되면 동맥경화, 천식과 같은 여러 질병 발생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암 발생의 20% 정도가 미생물들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러한 미생물의 다양성은 아기가 태어날 무렵 양수의 환경과 출생 시 산도를 거치는 과정, 모유를 먹는 과정 등을 통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12살에 도달할 무렵 성인의 다양성 수준에 도달한다고 하니 미생물의 관점에서는 13살이 되면 어른이 된 셈이다. 그래서 로미오와 쥴리엣이 그 나이에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일까?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면,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로마서 12:18)


 우리가 사는 사회도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산다. 내게 직간접적으로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 한두 번 이야기하다 보니 나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한 번도 보지 못한 지구 반대쪽의 어떤 사람들, 우린 이 땅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고 있고 어떤 형식이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오늘 내가 먹은 아보카도 열매는 남미의 어떤 이름 모를 농부가 땀을 흐리며 딴 것이고, 오늘 마신 카푸치노 한잔은 아프리카의 어느 아기를 둘러업은 한 엄마가 수확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에서 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 오늘 올린 영상이 나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고, 사람 사는 정겨움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 병원체처럼 타인을 병적으로 해롭게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의 성향에 맞든 그렇지 않든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그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인지하지 못한 혜택을 받고 살아간다. 우리는 이 이름 모를 온 땅의 공동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그들의 공로로 받는 혜택들에 대해 한번쯤 감상해야 할 일이다. 혹 딱히 내게 손해준 것도 아닌데 혐오스러운 사람이 있거든 ‘이 세균덩어리야’ 할 것이 아니라, ‘오 다양한 인류 유전체여!’라고 말하면서.


이전 07화 6Kg  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