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남긴 계절

The Seasons Left Behind

by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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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하나하나가 지도가 되고,

목깃에 남은 희미한 향기가 바람이 되어 나를 감싼다.

언젠가 나도 그 길 끝에서 당신을 다시 만날 것이다"


The Seasons Left Behind

옷장은 여전히 계절을 품고 있다. 빨간 플란넬 셔츠는 크리스마스 아침과 지글거리는 베이컨 냄새와 함께 떠오른다. 베이지 셔츠는 가을 단풍 숲 속, 서로의 어깨에 기대던 순간을 담고 있다. 초록 체크무늬 셔츠는 부고 사진 속에서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선명하게 나를 바라본다.


사람들은 남은 옷을 정리하며 시간을 견뎌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가위를 들 수 없다. 옷을 자르는 순간, 그 안에 스며든 체온과 호흡마저 사라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셔츠들은 팔을 벌린 채 허공에 매달려 있다. 잡을 수 없는 팔, 기대지 못하는 어깨. 그 빈 공간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그날 아침, 가슴 위에 손을 얹었을 때, 이미 심장은 멈춰 있었다. 코끝의 관을 떼고, 산소기의 둔탁한 박동음을 멈췄지만, 눈은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호수 위 카누, 돛단배, 햇살에 빛나는 산길—그 시선 끝에는 풍경이 있었다.


그 이후로 옷장을 열 때마다 여행길에 오르는 기분이 든다. 셔츠 하나하나가 지도가 되고, 목깃에 남은 희미한 향기가 바람이 되어 나를 감싼다. 언젠가 그 길 끝에서 다시 만날 순간을 떠올리며, 옷장 속 계절들과 함께 나만의 작은 순례는 계속된다.


By.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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