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체육공원-무릉외갓집
총길이 17.3Km
소요시간 5-6시간
삼다도소식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1046번지(돈지동 마을), 이곳에는 1910년대에 건립된 2층 판지벽 목조건물이 바다를 향해 있었다 이 건물이 지어진 40여 년 후, 6.25 전쟁이 발발하였고 1951 3 21일 육군 제1훈련소가 이곳 대정읍(당시에는 면이었음)에 설치되었으며, 그해 늦기에 이 건물 2층에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 리는 나무 간판이 붙여졌다
군예대(軍芸隊)는 육지부에서 피난 온 유호(일명 호동아), 박시춘, 그리고 당시 가요계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인 남인수 고복수, 황금심, 카나리아 등의 기수들과 주선태, 황해, 구봉서 등의 인기배우들로 편성 돼 있었는데, 대부분은 서라벌악단 소속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전선에 투입될 장병들에게 필승의 상무정신을 드높이는 일이었으며, 위문공연은 물론 수많은 군기를 만들어 보급하였다 상다도 소식은 모슬포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지금은 없어져 버린 군예대의 목조 2층 건물에서 유호작사, 박시춘 작곡, 황금싱의 노래로 만들어졌으며, 실제 이들은 이 건물의 1층(2층은 주로 창작활동과 노래연습을 이였음)에서 기거하였다
군예대 건물에서 불과 1백여 m 떨어진 바다에서 숨비소리를 들으며 만들어진 삼다도 소식은 훈련소 장병들을 위하여 수차례의 공연을 하고 난 후 지역주민들과 피난민을 위한 공연을 시작하려고 하자 엄청난 인파(그 당시 대정면의 거의 모든 사람들)가 몰려들어 당초 계획했던 장소가 모자라 인성리 300-3번지에 옮겨 훈련소장설 1주년 기념행사 (군민위안의 밤) 공연을 했을 정도였다.
Suaggy bakery Cafe는 대형 카페인데 수애기는 원래 제주 방언으로 돌고래를 뜻합니다. 이곳이 돌고래를 자주 볼 수 있는 해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오션뷰 중에서도 해질 녘의 노을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남방콘돌고래를 볼 날을 기대해봅니다. 카페는 소금빠이 시그니쳐라 합니다.
모슬봉
대정읍 모슬포 평야지대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오름. 모슬개(모슬포)에 있다고 하여 모슬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름 꼭대기에는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다. 모슬은 모래를 뜻하는 제주어 모살에서 나온 말
가자니아
집집마다 감나무가 보이지만 감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즉 감농사를 짓기에는 맞지 않은 기후대이다. 씨알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감들의 상태를 양호하지 않다. 그래도 마당에 감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육지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이 심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정여고 힘내라 플래카드
"긴 여정에 별처럼 빛날 너를 믿어" 제주도의 고등학교에는 이런 플래카드를 의례적으로 붙인다고 합니다. 육지의 학교에서는 본 적이 별로 없는데 학생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걸어서 보이는 점이 좋아 보입니다.
열녀오씨지문
열녀 오 씨 지문(烈女 吳氏 之門)은 조선시대 남편을 여의고 시부모 봉양에 지극한 효도를 다하여 나라로부터 인정받은 열녀 오 씨의 사실을 기록하고 기리는 비석입니다. 모슬봉을 지나 곶자왈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마을입니다. 남편이름이 밀양 박 씨에 이름이 성림이며 그의 처가 화순인 오 씨라는 그죠. 그런데 남편 박 씨가 죽은 날은 결혼하는 날 말을 타고 가다 떨어져 죽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재가하지 않고 씨부모를 공양했던 거지요. 자손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모슬봉의 꼭대기까지는 못 갑니다. 군사기지가 있어서 옆으로 쭈욱 둘러서 가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저 모슬봉의 둘레를 허리 두르듯 둘러서 건너편으로 가게 되는데 그 길에 묘지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11코스가 그래서 묘지순례코스라고도 불리는 모양입니다. 일본에도 공동묘지 순례코스가 있는데 어둑어둑 해질 때 혼자 걷는다면 다소 머쓱해질 수 있겠습니다.
육지의 묘지와 다른 것이 보입니까? 야자수가 심어져 있습니다. 동백이나 백일홍나무들은 비슷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봉분이 육지처럼 그렇게 만들어져 있네요. 최근처럼 보입니다. 옛날 제주 묘지는 화산돌을 둘레로 사각으로 해서 무덤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무덤이 좀 다르네요.
모슬봉 정상 스탬프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찾는 일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문구가 확 들어옵니다. 올레 길을 걷다 보면 이런 명문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걷는 의미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질병과 슬픔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신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이다.'
메밀꽃이 피어 있습니다. 아까 대정여고 방향의 뒤편이 여기입니다. 둘레 언덕을 내려오다 보면 깨대들이 깨가 털린 후에 쌓아져 있네요. 그 깨들은 제주의 맛있는 나물 반찬에 들어 가 맛을 잘 내고 있겠지요.
땅이 좋은 만큼 농사가 잘 됩니다. 모슬이라는 말이 모레이듯 모레땅이 기름지고 보드라워서 양배추가 아주 크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가을 감자는 저장성이 좋아서 겨울의 추위에도 잘 썩지 않고 보관이 잘 되는 편입니다. 특히 제주도 감자는 눈이 와도 땅아래에서 바로 캐서 소비자들에게 공급합니다. 마트나 큰 슈퍼에 가면 겨울에 새까만 흙이 있는 감자이 이 감자입니다. 맛은 여름 하지에 캐는 하지 감자보다 못하지만 추위에 강하고 저장성이 좋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덩굴은 참외 덩굴인데 지금부터 시작할리는 없고 왜 심어져 있는지 모르겠네요. 중간에 있는 태양열전기패널도 여기 제주를 비켜나가지 못하네요. 제주에도 밭농사 대신에 전기농사가 서서히 시작되려는 모양입니다. 오른쪽 채소는 무입니다. 다른 코스에서는 이제 씨를 뿌려서 스프링클러로 싹을 틔워서 키우는 수준이었는데 여기는 생장속도가 김장 시즈보다 빨리 출하할 수 있는 정도로 다마가 굵네요.
올레길의 묘한 매력은 이 담벼락들입니다. 그토록 많은 돌덩이들을 허술하게 쌓은 것 같아도 절대로 강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허술하면서 절대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지나치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난주마리아 성지. 올레 11코스는 죽은 자들이 많은 코스가 '삶과 죽이 생존하는 길, 근대와 현대사가 녹아 있는 올레코스'로 이름나 있습니다. 정난주(본명 정명련 1773~1838)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시대의 비극적 인물입니다. 정약용 맏형인 정약현의 딸이면서 천주교인이었던 황사영의 부인이었습니다.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박해 상황과 신앙의 자유를 외국의 지원을 요청하는 '황사영 백서'를 작성했지요. 조정에서 가만 두겠습니까? 그 일로 발각되고 순교를 했습니다. 정난주 마리아는 '역적의 아내'라는 죄목은 관노비 신분으로 대정형 이곳으로 오게 되지요. 그래도 함경도 보다는 제주가 멀지만 다소 약하고 살기에는 좋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유배라는 게 어디까지나 유배지요. 유배 당시 젖먹이 아들 황경한을 데려 왔으나 아들마저 노비가 될 것을 염려하여 뱃사공과 나졸을 설득하여 아들을 추자도 한 바위 위에 내려놓고 홀로 제주 땅을 밟는 아픈 이별을 감행합니다. (나중에 아들은 오 씨 성을 가진 어부에게 발견되어 자랐으며 황경한의 묘소는 추자 올레 18-1코스에 있다 합니다.) 제주 대정현에서 38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마을 주민들을 교화하여 노비 신분임에도 불구 서울 할머니로 불리면 존경을 받았다 합니다.
걷다 보니 오후 1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연휴라 문이 열린 식당도 없고 겨우 열린 식당을 찾았는데 중국집입니다. 중국집에 그래도 해물짬뽕이 있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막걸리는 메뉴에 있었는데 식당에서 사다 주었습니다.
신평곶자왈시작점입니다. 종점은 무릉 곶자왈입니다. 비밀의 숲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 가보면 알게 됩니다. 곶자왈은 제주 방언으로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진 숲을 뜻한다 합니다. 물론 용암이 흐르다 굳은 독특한 지형(용암지대) 위에 형성된 숲입니다. 그래서 물이 잘 스며들며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공존하는 희귀한 곳입니다. 이 곶자왈 구간은 제주 올레길 개척을 통해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 곳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동과 평온함을 선사합니다. 이 길이 아주 길기 때문에 마실 것을 충분히 준비해서 걸어야 합니다.
곶자왈 주변의 돌밭을 개간하여 생계를 이어 왔는데 '정개왓'이라는 독특한 지명이 있습니다. 신평-무릉 곶자왈 구간 중간쯤 '정개왓 광장'을 만나게 되는데 정개왓은 정 씨(丁氏, 鄭氏 등) 성을 가진 사람들이 밭을 일구었던 곶자왈 속의 밭이라는 제주어 지명입니다. 정 씨 밭이라는 의미이지요. 이곳은 돌멩이가 많고 농사를 짓기에는 맞이 않아 보였는데 개간하여 일단 농사를 지으면 보온/보습 효과 덕분에 일부 작물이 잘 자라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이 척박한 땅에 밭을 일구었던 제주도 사람들이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 수 있는 곳이며 무수히도 많은 밭의 경계를 나누었던 돌담이 있습니다. 그 돌담 위에 커다란 나무가 여지없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사람은 이제 사라지고 없고 단지 경계를 나타냈던 돌담 많이 헝클어진 덩굴과 나뭇가지들이 덩하지 있습니다.
무릉외갓집은 이전에 11코스의 종점이었는데 코스 종점 위치가 좀 옮겨졌더군요. 마을 기업으로 1994년 폐교된 학교를 리모델링하여 마을의 새로운 공간으로 재 탄생되었습니다. 카페도 있고요. 커피, 주스 등 제주 농산물 음료도 있습니다. 위의 무릉외갓집은 간판이고 왼쪽으로 돌면 4.3 위령비가 나옵니다. 그를 지나면 쉼터의 초등학교 분교의 학교가 나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