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맞이, 스승님들을 위한 변명의 글
외과의사의 길로 들어선 이후 그야말로 여러 교수님들을 모시고 일했지만, 그 많은 교수님들 중 일에 있어서 – 특히 수술장에서 – 허술한 모습을 보이시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뭐 어디까지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찰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수술장이라는 공간의 특성에 개개인의 본성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사석에서는 유머도 넘치고 부드러우신 분들도 일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태반이니, 개개인의 성격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부분이 존재함은 분명하다. 그러한 철두철미함과 완벽주의가 그들을 대학병원의 교수로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것이 주변인을 향한 비난과 질책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기도 하는데, 이 때 욕받이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대개는 스크럽 간호사 혹은 전공의이다.
개의 자식 소의 자식 욕을 항시 입에 달고 살던 사부님이 계셨다. 그 분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동물의 새끼 혹은 육체적/정신적인 병을 가진 사람, 때로는 쓸모를 다해 버려진 물건 정도의 취급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제2조수로 참여한 수술에서 한 손엔 광원이 달린 기역자 retractor, 한 손엔 malleable retractor를 들고 있는 힘을 다해 견인을 하고 있노라면 여지없이 너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시원한 욕지거리가 들리는데, 사실 어시스트 자리에서는 골반 저 깊숙한 곳이 절대 보일 리가 없어서 내가 잡고 있는 수술 기구들이 대체 어디를 걸고 당기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그저 당기라는 대로 당기고만 있는데 나 때문에 안 보인다니 팔이 빠져라 당기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저 억울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수술 내내 욕을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수술에 집중은 더 안 되고 밥을 안 먹고 욕만 먹어도 배불리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만 머리에 맴도는데, 실은 욕을 먹는다고 배가 부를 리는 없어서 그 와중에도 배고픔이 밀려와 인턴 선생이 오늘 저녁은 뭘 시켰을까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 있다가 수술에 집중 안 하고 딴 생각한다고 또 욕을 먹게 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 분의 입에 오르는 욕의 대상은 절대 전공의에 국한되지 않아서 스크럽간호사, 순환간호사는 물론 타과 전공의와 교수, 외과 동료 교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광범위했다. 항상 분노에 차 있는 교수님을 바라보고 있자면 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정작 내가 교수가 되고 시간이 흐르자 스크럽간호사, 외과 전공의는 물론 타과 전공의, 심지어는 개원의에 이르기까지 주변인들의 미숙함이 점점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환자는 진작에 CT를 찍었어야지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이 환자는 내시경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곧바로 수술을 의뢰했었어야지. 이 환자는 상태가 이 정도로 심각한데 입원시켜서 일주일씩 데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냈어야지. 물론 의학에 ‘무조건’이란 없다. 내가 그들을 탓하는 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가정법일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었을 환자가 순간의 판단으로 인해 나빠지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속상한 마음이 어쩔 수 없는 분노로 나타난다. 나 역시 내 자신이 완벽하지 못함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완벽해지려고 매순간 노력하는데 그 노력이 주변인들의 미숙함으로 헛수고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정규수술보다는 응급수술을 할 때 심해진다. 응급 상황에서의 순간적인 판단은 쉽게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 년간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 확률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의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판단 착오는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이 환자 상태의 악화로 이어지고 결국 한 발 늦은 응급수술을 하게 될 때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분노의 감정이 어쩔 수 없이 앞서게 된다. 감출 수 없는 분노로 쌍시옷이 들어가는 욕을 한바탕 하고 나면 조용히 깨닫게 된다.
아, 내가 그 분을 닮아가고 있구나.
그렇다. 이 글은 분노조절장애가 아닌가 의심을 받는 수술장의 외과 교수들을 위한 변명이다. 그들이 화를 내고 욕을 하는 것은, 완벽해지고자 하는 욕심이며, 그 기저에는 환자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피력하고 싶었다.
혹여 그대들의 스승이 화를 내더라도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시길. 그들도 그대들과 같은 사람일 뿐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