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 인생 망한 것 같다.
어쩌면 처음에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인 줄 알았다. 그 다음에는, 내 마음같지 않게 진로를 정해버린 첫째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둘째아이 사춘기와의 전쟁 때문이라고도 믿었다. 예전에는 거의 하지 않았던, 최고 긍정주의자인 내가 '인생 망했다' 는 생각을 이렇게 매일매일 하는 이유는.
매일 실연을 당하고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이 패배감은. 내 인생에서 거의 겪어보지 못했던 망한 기분은. 그래서 나는 마치 처음 성인을 맞은 스무살처럼 내가 사막을 건너는 중이라거나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헤맸다.
그런데, 이 즈음 우리가 겪는 이 깊은 무력감과 낭패감, 우울함은 사실은 '필수코스'란다.
별다른 치명적인 실패를 해보지 않았던, 아니 실패를 해도 적당히 합리화하면서 살았던 실패면역자가 되어 중년에 이르렀을 때 과학이라도 기대어 그 이유를 찾고 싶은 나같은 사람을 위한 연구가 많이 있었다.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란 책에서는 (정말 50부터 반등한다고? 20이나, 30이 아니고?) 전세계에 걸친 사람들 대상으로 오랜 기간동안 인생에서의 만족도 조사를 했을 때 전 세계 공통적으로 40대~50대 정도에 최하를 찍는 U자 곡선이 나타난다고 말이다. 최하를 향해 점점 낮아지다가, 50대 초반, 즉 대체로 '찐중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시기에 밑바닥을 치면서 서서히 위로 곡선을 그린다.
그 이후에는 오히려 점점 행복하다고 느끼는 만족도가 높아진다, 만족, 행복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잠시 미뤄두더라도, 이 행복곡선에는 성별, 결혼유무, 자녀나 부모의 여부, 직업 등이 아니라 오로지 '나이'라는 변수만이 작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남자건 여자건 기혼이건 미혼이건 실직했건 아니건 아이가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공평하게- '그 나이'가 되면, 이제 삶에서 뭔가 쌓아올린 것이 가장 높아보이는 그때, 거꾸로 감정의 구렁텅이속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와,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에 대해, 모든 인간에 대해, 공통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겪는 이 '망한 느낌', '별거 아닌 게 된 것 같은 기분',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무력감' 등등이 인생의 당연한 단계라는 거지? 나는 그저 당연한 수순을 밟고 있을 뿐이라는 거지? 우린 그저 시간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라는 거지? 이것은 저주인가 구원인가? 나는 그 그래프를 동아줄처럼 덥석 붙잡는다. 썩은동아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저 내가 줄이나마 잡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거창하게도, 전 세계 나와 같이 그 지하 터널속을 걷고 있는, 특히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 꼭 나같은 사람, 포물선 최저점이라 여겨지는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인류군집에 위로를 건네고 싶어졌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듯 중년은 이렇게 와버린 것이라고. 지금 우리를 무언가 또다시 관통하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라고, 그저 걸을 때가 온 것이라고. '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손수 치러야할 통과의례를 만들어가야하는 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