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Oct 27. 2024

도망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도서관을 마치 도망치듯 나왔다. 몇달여간의 도서관 사서로서의 경험은, 더 이상 도서관에서 영영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바꾸었다. 나는 사서로 일하고 싶어서 두 학기를 일주일에 3번씩 지하철을 한 시간 이상 타고 가서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고 수료식을 하고 자격증을 땄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사서로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책을 그렇게 사랑했지만,사랑하지만.그리고 이것은 늘 네 마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란 노래 가사도 있는데 이럴 건지 모르니까 그런 것이다. 알면 인생 2회차일걸. 한 때는 이런 말들이 너무도 변명처럼 느껴졌다. 무책임한 자기합리화. 인생이 처음이라 다 그런거라는 말. 그렇지만 그게 진실인 걸 어쩌란 말이냐. 우리는 알지 못한다, 미래를, 미래의 나를, 미래의 너를.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때가 오면 인생이 더 이상 쉽지가 않아지는데, 그 때가 바로 인생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은 때이다. 바로,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서가 되고 싶었다고 해서, 직업이 사서라고 해서 조용한 성격만은 아니다. 난 오히려 외향적인 쪽에 가깝다. 그리고, 사서라는 직업은 책만을 상대하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을 대면하는 직업에 가까웠...다는 것이 내가 짐작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고나 할까.

나는 첫째아이가 입시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고,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음악쪽의 진로를 택했을 때 내 계획이 틀어지고 실패하고 내 육아관이 부정당하고 내 인생이 망한 것처럼 느꼈다. 거의 내 삶 최초로 맛본 열패감이었다. 그전까지는, 내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늘 합리화하고 만족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게 타인이 되니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타인마저, 타인을, 타인의 삶을, 내 삶을 통제하고 싶어했는지 알았다. 사서는 더 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나는 또다시 전혀 하지 않았던 일에 도전했다.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또 하리라고 꿈에도 생각한 적 없는 줌바를 시작했다. 사서와 줌바라. 그렇지만 이쯤 되고 보니 나는 그저 '실패 경험치 축적자'가 아닌 '도전'이 직업이 된 느낌이다.

나는 지금 중년의 멀미를 하는 중이다. 배가 흔들릴 떄는 그 흐름에 맡겨야 멀미가 덜할 것이다. 로망의 삽질로 얻은 깨달음은 이것이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던가, 모든 것을 이룬 자가 제일 불행하다.

이전 08화 그림책 읽는 어른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