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도서관을 마치 도망치듯 나왔다. 몇달여간의 도서관 사서로서의 경험은, 더 이상 도서관에서 영영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바꾸었다. 나는 사서로 일하고 싶어서 두 학기를 일주일에 3번씩 지하철을 한 시간 이상 타고 가서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고 수료식을 하고 자격증을 땄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사서로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책을 그렇게 사랑했지만,사랑하지만.그리고 이것은 늘 네 마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란 노래 가사도 있는데 이럴 건지 모르니까 그런 것이다. 알면 인생 2회차일걸. 한 때는 이런 말들이 너무도 변명처럼 느껴졌다. 무책임한 자기합리화. 인생이 처음이라 다 그런거라는 말. 그렇지만 그게 진실인 걸 어쩌란 말이냐. 우리는 알지 못한다, 미래를, 미래의 나를, 미래의 너를.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때가 오면 인생이 더 이상 쉽지가 않아지는데, 그 때가 바로 인생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은 때이다. 바로,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서가 되고 싶었다고 해서, 직업이 사서라고 해서 조용한 성격만은 아니다. 난 오히려 외향적인 쪽에 가깝다. 그리고, 사서라는 직업은 책만을 상대하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을 대면하는 직업에 가까웠...다는 것이 내가 짐작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고나 할까.
나는 첫째아이가 입시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고,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음악쪽의 진로를 택했을 때 내 계획이 틀어지고 실패하고 내 육아관이 부정당하고 내 인생이 망한 것처럼 느꼈다. 거의 내 삶 최초로 맛본 열패감이었다. 그전까지는, 내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늘 합리화하고 만족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게 타인이 되니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타인마저, 타인을, 타인의 삶을, 내 삶을 통제하고 싶어했는지 알았다. 사서는 더 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나는 또다시 전혀 하지 않았던 일에 도전했다.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또 하리라고 꿈에도 생각한 적 없는 줌바를 시작했다. 사서와 줌바라. 그렇지만 이쯤 되고 보니 나는 그저 '실패 경험치 축적자'가 아닌 '도전'이 직업이 된 느낌이다.
나는 지금 중년의 멀미를 하는 중이다. 배가 흔들릴 떄는 그 흐름에 맡겨야 멀미가 덜할 것이다. 로망의 삽질로 얻은 깨달음은 이것이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던가, 모든 것을 이룬 자가 제일 불행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