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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Oct 27. 2024

모르는 일들

중년 곡선이라는게 있다고 했다. 포물선을 아래로 뒤집어놓은 모양인데, 인생의 만족도를 중년의 나이에 가장 낮게 느낀다고 했다. 찐중년.이제 올라갈 일만 남이대로 살수도 죽을수도없을때 나는 사서를 해보았고, 그만두기도 했다.

나이가 드는 것은 또 하루 멀어져가고, 매일 실연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매일 실연을 당해도 일어나고, 밥은 해야하고, 설겆이를 해야한다. 아무 의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이대로 살 수도 죽을수도 없을 때 서른이 온다고 했었던가, 이대로 살 수 밖에 없을 때 내 나이가 온다. 그래서 내가 지금 절절히 느낀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이다. 하고 싶은 것을 미루거나 하고 싶은 것 말고 다른 걸 하는 것은 세상이 정해놓은 이미지일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라면 이미 하고 있을 것이다. 하고 '싶지' 않고.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이라는 포도 농사를 짓는 이야기에 관한 책에서 농사지을 땅을 찾아다니는 작가에게 이웃 할머니는 "농사는 뭐하러 지을라캐? 얼굴 시커멓게 되고 허리 꼬부라들고 폭삭 늙는다. 시작하면 그만둘 수도 없어. 절대 하지 마라."라고들 말린다. 오 마이갓. 이거 꼭 자식농사 그 얘기아닌가.  아니, 모든 '하고 싶은' 일이 그런 것 아닌가.  

아 그러니까요. 고생이네요. 이걸 왜 하냐구요? 모르니까요. 해봐야 아니까요. 고생을 한번 하고 싶어서요. 무료한 것보다는 고생이 낫거든요. 고생이 인생의 정수라고,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이젠 쉽게 내 입밖으로는 도저히 말 못하겠지만. 

결심이 필요한 순간, 이라는 책에서 한 경제학자는 사람들은 정녕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일들-결혼이나 자녀양육과 같은-한없이 손해로만 보이는 일들을 하기로 결심하고, 행하기도 하는 것에 대해 그 길은 역설적으로 인간적인 성숙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 모든 선택은 몰라서 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숙해진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명제가 진실이라면 하하, 나는 정말 이전의 나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성숙해진만큼, 그만큼 아프다. 귤은 상처가 많이 날 수록 스트레스를 받아 에틸렌이라는 물질이 나와 더 달콤해진다지. 아픈만큼 성숙해진다, 는 말은 아픈만큼 달콤해진다고 해도 될까.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모르는 일을 많이 하기로 했다. 인생은 어차피 모르는 것이니까. 인생은 모르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조금 아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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