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되고 싶어 도서관에서 일을 시작한 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도서관이라는 공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좋아한다. 책은 도끼다, 책은 구원이다, 책은 방패다,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이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책은 사람이다. 책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에세이는 그 사람의 일상 이야기이고, 소설은 그 사람이 해주는 이야기이고, 자기개발서는 어떤 사람의 조언이고, 이론서는 그 사람이 가르치는 내용이다. 모두 비슷한 얘기라 할 지라도,백 가지 디테일이 있는 이유는, 바로 백인백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좋은 작가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좋은 작가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누구든 자기 인생의 작가다. 아무리 뻔해보이는 내용이라도, 우리는 문체, 즉 사람이 말하는 고유한 방식을 통해서 다른 책으로, 다른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고, 그래서 책은 억지로 읽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책 개똥철학. 책은 그 작가와 구분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기에 책을 읽는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보냈다고 하던가, 우리는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기에 책을 읽는다.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기에 도서관에 간다. 나는 사실 그런 단순한 낭만을 가지고 사서 자격증을 땄다.
아마도 책을 사랑하는 방식은, 어떤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책과 사랑에 빠지는 방법 또한. 그러니 책을 읽는 방식에는 모범답안이란 건 없다. 백 명의 작가가 있고, 백 명의 독자가 있다. 나는 금사빠에 가깝다. 사실 어떤 책의 표지나 몇장만 읽고 이 책 전체를 사랑할 것 같은 확신에 빠지고, 그렇게 읽은 책은 끝까지 읽으려고 애쓰고, 책이나 작가가 마음에 들면 거의 무턱대로 그 작가의 다음 책을 선택한다. 나는 어떤 책이 좋으면 일단 작가부터 조사한다. 작가소개를 마치 제품 설명서처럼 아니 제품 설명서보다 자세히 읽고, 작가의 출생과 이력,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공부를 했는지. 나는 어떤 글을 쓴 사람의 이유가 그렇게나 궁금하고 그 사람 자체가 궁금하다. 책에 나오는 실제 지명이나 음식들을 검색해보고 같은 이미지를 공유하려고 애써본다. 그리고, 그 책이 좋았다면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서 읽는다. 한 술 더 떠서 나는 번역가도 사랑한다. 요즘은 번역도 저작 업무의 연관성을 고려, 저작이라는 큰 범위로 간주해선지 번역가의 소개도 꽤 자세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떤 공부를 했는데 번역을 하게 되었는지. 작가가 전혀 엉뚱한 분야, 천문학을 전공한다든지 탐험가였다든지-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글을 쓰게 된 경우도 많지만, 번역가 또한 전혀 색다른 전공을 하고 글과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을 해오다가 번역을 하게 된 경우가 많다. 그저 일관되게 한 우물만 파서 번역가로서의 경력이 오래된 번역가도 좋지만 나는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을 하고 번역가가 된 많은 경우의 번역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일생을 훑어본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그 번역가의 용기를 더욱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번역, 힘들죠. 그래도 번역이 제일 재미있나요,하는 인사도 건넨다. 말하자면 번역가는 다른 언어를 쓰는 친구를 자신의 말로 소개시켜주는 그런 사람이니까 또다른 의미로 내 '지인' 이 된다. 번역가에 관심이 생기면 같은 번역가가 번역한 책들만 찾아보기도 한다. 정말 이쯤 되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책 스토커인가보다. 책이 사람이라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