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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Oct 11. 2024

인스턴트 묵언수행

어쩌면 내가 아는 한, 도서관은 세상에서 조용한 장소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떠올려보라. 사람들이 모두 침묵을 약속한 공간. 어느 곳에 위치해있어도,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과 단절되어 외따로 떨어져있는 공간은, 대체로 네모반듯한 모양을 하고 마치 동굴처럼, 잊혀진 바다 아래 심연처럼 고요한 공간은 거의 도서관밖에 없다. 

몇몇 공간이 떠오르긴 한다. 어떤 미술관이 그렇고, 어떤 오래되어 내버려진 성당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거의 완전한  침묵을 공짜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그리 흔하지 않다.  물을 사서 먹듯이, 공기를 사서 먹듯이 침묵도 귀해져서 사야만 한다면 어떨까? 공짜 침묵이 있는 도서관으로의 발길이 늘어나겠지.

어느 사막, 유목민들은 낯선 손님이 오면 꼭 뜨거운 차 세 잔을 대접한다고 한다. 뜨거운 차 한잔을 한 모금 넘길동안만은 우리는 잠시 침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내가 도서관을 사랑했던 이유중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나만의 공간, 나만의 침묵이 급히 필요할 때면 나는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커다란 천가방을 둘러매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사람은 강제된 고요함이 필요불가결할 때가 있다. 그건 다른 누구의 탓도 책임도 아니다. 예전에 혼자만의 시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적지만 꼭 필요한 비타민과 같다.

요즘 도서관들은 이용자들을 늘리기 위해 '시끄러운 도서관'을 표방하며 다양한 행사들을 하기도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도서관의 기능은 '침묵' 이라는 법이ㄹ도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일단 도서관에 들어오면 '쉿, 정숙' 한다. '책들에 둘러쌓인 작은 침묵' 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보장된다. 

책이니, 책의 냄새니, 지식의 보고이니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도서관의 매력은 이 침묵의 시간. 이제 이렇게 조언해줄 수 있지 않을까.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세요. 거기 침묵 테라피가 있어요. 수도원이나 절에선 수행을 위해서 몇주동안 말을 하지 않는 묵언 프로그램에 일부러 들어가기도 한다는데. 바쁜 일상과 소음속에서 우리가 깨닫지 못한 순간에 짧지만, 우리는 도서관에서 묵언수행을 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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