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원한 이른바 '개관연장'사서란 오후 6시이후에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문화관광부에서 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하는 단기 계약직이다. 나는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문을 닫고 난 박물관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불이 모두 꺼지고 문이 닫힌 도서관 문안쪽에 내가 직접 있기 전에는, 그걸 내가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조차 놀랄 일이다. 박물관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도서관은 밤 9시가 되면 책들이 말을 한.....다, 물론 농담이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이 문을 닫을 거라고 여겨지는 6시 이후에 도서관밖에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나면 왠지 모르게 도서관은 조금씩 스스로 고립되고, 특별해진다. 그때까지도 어느 정도는 그랬긴 하지만 지금부터는 더더욱 스스로 고립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립될 것이라는 고요하고도 확실한 약속인 느낌이다. 내가 일했던 도서관은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밤에도 정말 한적했다. 엘리베이터를 열고 들어오자마자 자동문이 열리고 정면에 데스크가 보이는 구조였는데, 창문이 없는 그 데스크에 앉아 있으면 밤인지 낮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세상의 한가운데 있는 우물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도서관은, 낮동안 가장 조용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있지만 그렇게 고요한, 암묵적으로 침묵이 약속된 공간은 거의 찾기 힘들다. 스터디 카페 등 특수한 공간을 제외하고말이다. 어딘가에 특별한 산소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특별한 침묵을 약속받을수있는 공간이 도서관이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런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곳은, 낮의 도서관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조용한 곳은, 아마 밤의 도서관일 것이다.
밤 10시까지의 도서관 업무중 중요한 업무중 하나는 사람들이 다른 도서관의 책을 이용하고 싶어 신청한 일명 '상호대차' 도서를 찾아놓는 일이었는데, 특히 사람들이 모두 다 나가고 불이 모두 꺼지고 문이 잠긴 어린이자료실에 그 문을 다시 열고 살포시 불을 켜고 혼자 들어가 책을 찿는 그 일은 책의 무덤속에서 뭔가를 발굴해내는 것 작업과도 비슷하게 조용했다. 상호대차 책들은 그 시기 아주 인기가 있는 책도 있지만 사람들의 손때가 거의 묻지 않은 책도 있다. 그 책들이 지금 선택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도서관 사서라고 해도 많은 것이 기계로 처리되고 있는 지금 책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손에 들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은데, 그렇지만 밤의도서관에서는, 어느 한켠에서는 실컷 그럴 수 있었다. 사람들이 찾고싶어하는 책(보물)을 리스트를 보고 찾아주는 그 일을 참으로 단순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얼핏 서가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책들은, 불이 꺼진 자료실안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책들은 선택을 받아 서가에서 뽑아져나올때 비로소 참았던 큰 숨을 뱉어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