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Apr 17. 2024

내가 도서관으로 간 이유

공기업 이전때문에 일하던 직장이 전국으로 뿔뿔히 흩어지게 된 우리 부부. 두 아이 워킹맘으로 살아가던 나는 마침 핑계를 찾은 양 퇴사를 하고 남편의 회사가 이전한 곳으로 따라왔다. 처음 몇년은 통영, 거제, 울산, 양산, 하동, 구례..우리나라 남쪽 각지를 여행다니며 마냥 좋았고, 마냥 쉬었다. 잘 모르는 데이비드 소로 아저씨도 끌어들이며, 여기가 월든이로구나 했다. 그러나 소로가 그 숲에서 1년후에 나왔듯 나또한 반복되는 가사일 속에서 달콤쌉쌀한 권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무엇을 위해서도 쓸 수 있는 시간이 이쯤되면 그 무엇을 위해서도 쓸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진다. 말그대로 사방이 훤히 뚫린 감옥이다. 아무도 가둬놓지 않았는데 나올 수 없는. 무어라도 해봐야겠다, 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회사를 그만두고 소원을 성취하듯 가장 원없이 드나들었던 곳은 도서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책도 좋아하고 서점도 좋아하지만 또 도서관은 도서관만의 감성이 있다. 어릴 때 집에 책이 많지 않았던 나는 작은 바닷가 마을 사택 근처 작은 회사 도서관에 내집처럼 드나들었던 향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일상에서 권태가 너무 많은 산소처럼 차올라 숨막힐 것같을 때 작은 출구가 필요할 때면, 언제나 도서관으로 걸어갔었다.

생각할수록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어졌다. 인생에는 알 수 없는 작은 물길들이 다른 방향들로 트이고 어느 순간 그 물길들이 모여서 크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인데, 그때가 그 시점이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일을 하려고 보니 채용공고란에는 아무리 단기 아르바이트라 해도 기본적으로 듣도 보도 못한 사서자격증이 있어야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따기로 했다.

사서자격증을 따려면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거나 사서교육원에 등록해서 일정 기간동안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나로서는 아직 둘째가 초등학생이어서 대학원에 가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인데다가 (공부가 힘들 것 같아서 하싫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그나마 전국에 몇 없는 사서교육원이 마침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있어서 나는 교육원에 가기로 했던 것이다. 이렇듯 인생은 당시 작은 몇개의 물길들이 모여서 큰 물살이 되어 떠민다. 작은 우연들이 모여서 필연이 된다지만 그 우연들도 사실은 더 작은 필연들인것이다. 어쩌면 이 긴 인생에 어떤 발자국으로 남을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만 보이는 나스카의 불가사의한 그림처럼 어쨌든 나는 발자국을 만들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