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름돌을 내려놓다

by 연이

임신테스터기에 두 줄이 선명하다.

결혼하고 1년을 기다려 듣게 된 소식이었기에 기쁨은 표현할 수 없었고 그렇게

나도 엄마가 되는구나 좋아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된다는 건 준비가 덜 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시작이었다.


임신 4개월째부터 입덧으로 고생했고 특히 냉장고 문을 열면 나는 반찬냄새가 유난히 힘들어

문을 열 수 조차 없었다. 매일 먹던 김치였지만 입덧이 시작되고부터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하게 느껴져 입덧이 가라앉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남편은 주방에서 혼밥을 해야만 했다.

입덧으로 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기운 없고 힘은 들어도 한 번씩 태동을 느낄 때면 생명을

품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우리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게 고맙고 감사했다.

임신기간 동안 친정엄마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10달을 꼬박 채우고 10월 9일 한글날 우리 첫 딸이 건강하게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잘 먹고 방실방실 잘 웃는 아이, 고된 육아를 잊을 만큼 딸은 나의 전부였다.

신랑보다도 딸 이유식이 먼저였을 만큼 우리 집 1순위는 딸이었다.


그렇게 키운 딸이 지금은 28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직장을 다니고 있다. 20살이 넘으면 자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28살이 되어도 엄마 눈에는 마냥 철없는 아이 같이 느껴진다.

가끔 딸아이가 독립을 하겠다고 한 번씩 말을 꺼내기도 하지만 무서운 세상에 어떻게 혼자 살게 내버려

둘 수가 있을지 내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아 독립을 반대했었다. 딸은 그런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며칠을 툴툴거리고 말을 걸어도 토라졌는지 대답은 시큰이다.


취업만 하면 나가 살 거라고 독립선언을 했던 딸이 어느 날 독립 포기를 선언했다. 이유는 지출을 아껴야

한다고 그 돈을 모야 여행을 하겠다는 것이다.

돈을 가장 빨리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쓰지 않는 방법뿐 그래서 월세를 줄이기 위해 독립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좋은 것보다 딸에게 이용당한 기분이 든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빨래며 밥이 해결이 되는데 굳이 나가서 이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딸은 집이 최고라는 걸 알게 된 모양이다.

속셈을 알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몇 년 전 딸이 술 한 잔 마시자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뭔가 할 얘기가 있어 보였다. 한잔 두 잔 술이 들어가고 남편과 딸의 얼굴이 빨갛게 될 때쯤 퇴사를 하겠다며 입을 뗀다.

회사 생활 3년 차였걸로 기억된다. 시시콜콜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무심한 엄마는 딸이 회사 생활을 잘하고 있겠거니 지레짐작 믿고만 있었다. 그러다 퇴사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들 취업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까 망설여졌다.

본인도 퇴사의 생각을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가끔 지나가는 말로 사람 때문에 힘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만 엄마인 나는 딸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남보다도 못한 말을 하고 있었다.

직장 생활하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도 있다고 가족 간에도 마음이 맞지 않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처음 만난 사람들이니 당연히 힘이 들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을 해주었지만 그건 나의 생각일 뿐이었고 딸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했다. 지금 힘들어하는 건 딸이기에 나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딸의 등을 두드려주니 딸은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냈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으면 저렇게 서럽게 울어대는지 우는 딸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무거운 누름돌을 얹어 놓은 것 같이 답답하고 속상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감사하게도 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 날과 똑같이 출근을 하고 친구를 만나는 일상을 살아갔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그저 바라만 보고 딸은 버티고 애쓰며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밝아지는 딸의 얼굴 아마도 무겁게 누르고 있던 책임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회사 생활에 적응하고 사람과의 인연을 하나씩 배워가며 딸.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가 보다. 엄마는 그런 딸을 그저 묵묵히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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