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사람, 걷는 사람

by 연이

1년전이었다.

어느 날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은 출근해서 퇴근 때까지 전화 한 통 없는 사람이다. 왠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고 이유는 동네 병원의 진료시간을 물었다. 요즘은 인터넷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걸 굳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건 같이 가자는 얘기다. 감기 한번 걸리지 않던 남편이 병원에 무슨 볼일이 있는 건지 물어보니 오늘 오전에 보건소 선생님들이 교육을 위해 회사 방문을 했단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혈압체크를 해주었는데 혈압이 높게 나와 약을 복용해야 할 것 같다는 동료들의 말에 전화를 한 것이다. 다음날 남편은 휴가를 내고 병원을 찾아가 혈압체크와 혈액검사를 했다. 다행히 혈압은 정상이었고 일시적으로 높게 나왔을 수도 있다며 꾸준히 관리하라는 말에 그날부터 건강을 위해 걷기를 시작했다.

본인의 건강을 챙기겠다는데 나는 ‘얼씨구나 감사합니다’ 했지만 밥숟가락 놓자마자 설거지도 하지 않은 나에게 빨리 옷 갈아입으라며 재촉을 해댄다. 나의 저질 체력과 본인의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를 정상화하기 위해 열심히 걸어야 한단다.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말만 들어도 벌써 지친다.


처음부터 무리하면 안 되니 간단하게 왕복 5킬로만 걷잔다. 나를 위해 짧게 시작하자는 말인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 뭐가 간단하다는 건지 5킬로는 무리인데 어쨌든 저질체력은 좋아진다고 하니 속는 샘 치고 걸어본다. 남편의 걷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 자꾸만 뒤처지고 그런 나에게 발을 맞추는 남편과 어찌어찌 30분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땀은 비 오듯 흐르는데 돌아갈 생각을 하니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다. 그런 나를 끌다시피 해 다시 걷게 한다. 걷는 내내 아이처럼 투덜거리니 내일은 오늘보다 더 걷자고 한다. 아 진짜 밉다. 그렇게 걷기를 한 지 1년이 지났고 아주 조금 체력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의 말처럼 한 걸음씩 늘려가며 걷다 보니 조금씩 걷는 거리도 길어졌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왔다. 오늘은 조금 더 멀리 가보잖다. 더 멀리 가보자는 말에 나는 핑계를 대며 컨디션이 별로라 걷는 게 힘들 거 같다고 해보지만 그런 나의 꾀를 모를 리 없다. 컨디션은 걷다 보면 좋아지니 일단 걸어보고 힘들면 돌아오자 말한다. 융통성까지 없다. 그래서 나는 걷고 있는 중이다.


걷다 보니 누군가는 달려 나를 추월해 간다. 여자가 2명, 남자가 5명 며칠 전에도 달리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볼 때마다 건강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내가 건강하지 못하니 부러움이 앞서는 것 같다. 걷는 것도 힘든데 달리는 거야 말해 무엇하랴. 내 앞을 달리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이 떠나지 않는다. 건강해 보이는 피부색이며 단단한 근육들이 부럽다. 나는 핑계를 만들어 걷기를 쉬어보려고 하는데 얼마나 달렸으면 저리 건강해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자 나를 반성하게 된다.


어릴 때는 평생 건강할 것 같고 병원 한번 갈 일이 없을 것 같더니 어느 날 갑자기 준비 없이 질병이 찾아왔다. 나를 원망하고 탓하고 울어도 봤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 이 순간 더 열심히 걸어야 한다는 결심이 솟구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건강을 잃고 나서 후회하고 뒤늦은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운동을 하는 이유를 꼽자면 모두 건강이라고 말한다. 그중 몇몇은 다이어트도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건강을 위해 걷거나 달린다. 많은 사람들이 저녁이 되면 산책 겸 걷기를 한다. 걷다 보면 어제 함께 걷던 부부며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아저씨 매일 비슷한 시간에 사람들은 걷거나 달린다.


나의 워치는 오늘의 목표를 달성했다며 하트를 빵빵 터트린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돌아오는 길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는 시간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엔 별이 반짝이고 그 별빛에 벚꽃과 수선화의 꽃잎이 걷는 나를 멈추게 한다.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편의 손을 꼭 잡아 본다. 우리는 건강을 핑계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귀찮지만 함께 하려고 하는 남편에게도 고맙고 본인의 건강을 핑계로 나의 건강을 챙겨주는 것도 고맙다. 이제 조금 덜 꾀를 부리고 열심히 걸어야겠다. 그를 위해 달리는 사람이 되리라.


내일은 내가 남편보다 먼저 운동화를 신고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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