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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J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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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Oct 15. 2023

PJ도 안다

시간이 지나면 힘들고 아팠던 기억이 조금은 흐릿해진다. 그 사이로 보이는 방울방울 눈물방울들도 말라버린다.

그래서 매일매일 메마르고 푸석푸석해도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감정을 느끼면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보면 K생각에 마음이 아려오기 때문이다.


밀어내고 지워버리고 무감각해지려고 노력하는 PJ는 잊어버린 기억들을 되살려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 맞다. 그때 정말 나쁜 사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망각'이라는 선물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지

느끼는 중이다.


한 번도 나만 좋다고 한 적도 없고 나랑 있을 때만 충실했던 비겁한 사람인데 어인 일로 그 모든 일을 다 잊고

안쓰럽고 짠하고 애달픈 마음이 들까.

하늘로 날아가는 저 새들도 짝이 있을 텐데 마치 짝 잃은 기러기처럼 마음이 허하다.

PJ는 아예 마음을 자극하는 K를 떠올리는 일을 안 하기로 했다. 감정이 말랑말랑해지면 떠오르는 K의 얼굴을 잊기 위해

매일매일 바쁘게 살아간다.


모바일 캘린더의 빈 구석이 보이면 바로바로 새로운 약속을 잡는다.

어제는 대학교 때 친구를 만나고 그제는 전 직장 친구를 만난다.

나에게 오지 않고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그의 비겁함을 생각하며 오늘도 K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려고 노력한다.

멀티 유니버스가 있다면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유니버스로 도망갈 텐데 멀티 유니버스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나 보다.


누구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을 텐데 PJ는 단 하나의 기억만 지우고 싶다.

지난 모든 기억들이 지금의 PJ를 만들었으니 모든 과거를 지우고 싶진 않다.

그 순간순간이 모여서 씨실과 날실이 되어 오늘의 PJ가 되었으니 모든 과거를 거부하긴 싫으니까.


망원시장


오늘도 강북감성 PJ는 망원 시장에서 크로켓을 사고 꽈배기를 사며 K를 밀어낸다.

그때의 너와 나는 이미 기억 속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인데 마치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연주를 듣듯이

오늘도 머릿속에서 너와 나의 그날들이 연주되곤 한다.

마치 어제 일인 양 연주되는 음악의 선율은 PJ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외워버린 악보처럼

연주되기를 반복한다.

말할 수 없는 비밀


피아노 연주를 멈춰야 너와 내가 다시 반복하는 기억의 선율이 끊어질 텐데 도대체 어느 유니버스로 가야만

너와 나의 기억의 선율이 멈출까?

PJ는 오늘도 K 생각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몸과 마음이 바쁜 하루를 보내곤 기진맥진했다.

날이 조금씩 추워지는데 아직도 K의 SNS는 멈춰있다. 아프다고 연락 왔던 너의 휴대폰 전화를 차단하고 PJ는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아프다고 했는데 지금은 괜찮은지 회복은 잘되고 있는지 신경이 쓰인다.

보나 마나 너랑 상관없는 일이다. 너나 잘 챙겨라.

라고 화낼 친구의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하늘은 파랗고 마음엔 구름이 끼었고 지울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바람과 함께 날려 보내며

누군가의 새 출발을 응원하며 아름다운 신랑과 신부를 만나고 돌아왔다.

PJ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아늑한 둥지에서 오늘도 PJ는 K를 잊지 못하고 기억의 선명함을 탓하며

좋아하는 인디 음악을 틀고 글을 쓴다.

단 하나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부디 너를 지우고 싶다. 고 PJ는 기도한다.


#기억 #말할수없는비밀 #가을하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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