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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J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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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Sep 23. 2023

남이었지

PJ는 오늘도 눈을 뜨면서부터 생각한다.

얼마 전 아프다고 연락 왔던 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언제나 마음은 대학교 1학년 때에 살고 있는 듯 마음 한 조각이 늘 멀리 떠나 있다.

다시 오늘로 데리고 오고 싶은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음 한 조각이 돌아오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오늘은 그 마음에 말을 걸고 싶다.


하늘은 파랗고 마침 비가 오고 나서 선선해지기 시작하여 가을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솔솔 부는 토요일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니 잠도 솔솔 온다.


마치 하늘이 파란 날에 열리는 상점이 있는 것처럼

하늘이 파란 날이 되면 마음이 설렌다.

바람도 솔솔 부는 이런 날엔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가야 할 것만 같다.


치료하면 낫는 병에 걸려도 병에 걸린 당사자는 괜스레 서글프고 씁쓸할 텐데

괜찮냐고 연락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PJ는 착잡한 기분이 든다.


아프다고 연락 왔다는 말에 PJ의 절친 L은 1초도 기다리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죽으면 장례식에 갈 거야?"

'장례식에 가면 안 되나?'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면 안 되는 관계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원수인가? PJ는 생각해 본다. '도대체 장례식에 가면 안 되는 사이는 어떤 사이일까?'

뭐 이미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가는 것은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니까 내가 아는 사람의 가족을 위로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장례식에 갈 필요가 없지 않나? 그냥 아프다고 연락이 왔다는 건데 아픈데 뭐 어쩌라고?

하면서 화를 내는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뭐 아프다고 연락할 수 있지. 종종 안부정도는 물을 수 있지.

자주 연락하는 것도 아닌데... 왜 안 되는 거지?

PJ는 내내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머리에 떠올라서 심란하기만 하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건지 뭐 때문인지 알 수가 없으나 PJ는 친구와 다름없는 K에 대한 친구의 반응에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애인도 아니고 불륜도 아니고 학교 선배가 아프다고 연락올 수도 있고 학교 선배가 이 세상을 떠나면 장례식에 가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사람이 아프다는데 화내며 신경질과 짜증을 동반한 친구의 말투에 불쾌하기까지 하다.

PJ 마음은 가을바람이 불어서인지 헛헛하기도 하다.

왜 연락할 통로를 열어두냐는 상담실장의 말에 PJ는 말했다.

"남이 되는 거 같아서요."


상담실장도 화를 내며 말했다.

"지금도 남 아닌가요?"


너무나 상식적인 그 말에 PJ는 당황하며 놀랐다.

"맞네요. 지금도 남이죠."


PJ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무뎌진 걸까?

결국 상처투성이였던 그날들을 어떻게 잊어버린 걸까?


함부로 대하고 마음대로 말하고 마구 칼로 찔러도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K와 '남'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의지의 문제인 건지, 마음의 문제인 건지 그걸 따진다고 뭐 할까? 싶기도 하다.

잡생각이 스며들 때는 책 읽고 잃고 걷고 음악 듣고 생각할 틈을 안 주기도 한다.

부질없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스며들 때는 다른 일에 집중하는 편이 PJ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비운다고 해도 비워지지 않고 지운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에 새겨진 문신이 지워질 때쯤 다시 문신을 살리는 그 모든 행위에서 벗어나기로 했으니 말이다.


생각이 날 때면 PJ 마음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너무 낯설지만 생각한다.

수술은 잘 되었을까?

남인데 뭘 궁금해해.

아 맞다. 남이지.

눈물이 날 만큼 서글퍼지면 생각한다.

아 맞다. 남이지.

마음이 울적해지거나 보고 싶어 지면 생각한다.

아 맞다. 남이지.


나쁜 놈도 아니고 죽일 놈도 아니고

그냥 남이다.

남...


PJ는 만난 시간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이별이 완성된다고

들었는데 병적인 집착과 미련이 얼마나 PJ의 삶을 병들게 하는지 잘 알면서도 남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리움에 익숙한 채로 살아간다.


그걸 굳이 남이 말해줘야 알 수 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세상 똑순이처럼 살면서 왜 K에 대해서만은 세상 바보

천치처럼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래봤자 기껏해야 그냥 '남'인데...

그냥 '남'이지.


오늘도 혼자 보내는 주말에 밀려오는 오만 잡생각에 PJ는

생각한다.

그 남이라는 그 사람은 괜찮을까? 아프진 않을까?

회복은 잘하고 있을까?


세상에 연예인이랑 재벌 걱정만큼 쓸데없는 걱정이 없다던데 연예인도 재벌도 아닌 '남'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화가 난다.


PJ 스스로에게 소리친다.

'이 바보야, 넌 정말 왜 그러니? 배가 불렀지. 한가하지?

살만한가 보다. 기껏 남이 생각나는 걸 보면...'


정말 그런 걸까? PJ에겐 생각하면 눈물 나는 사람이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엄마이고 한 명은 K이다.

엄마는 PJ에게 애증을 남겨준 사람이니까.

그러고 보니 둘 다 애증관계이다.

사랑받고 싶었는데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던 두 사람...

아직도 아쉬워서 미련을 못 버려서 그런가 보다.

이젠 용서하고 그 모든 애증을 태워버릴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아직은 에너지가 있나 보다. PJ는 오늘도 생각한다.

아직은 미련이 남아 있나 보다. 그만 복기하고 훌훌 털어버리고 헐렁헐렁하게 살자고.

오늘도 PJ는 다짐한다.


그만큼 아쉬워하고 속상했으면 훌훌 보낼 만도 하다고.

용서하고 보내주자고. 청춘의 객기... 뭐 그런 거 아니겠냐고.

청춘의 허세... 그런 거 아니었겠냐고...

그렇게 안부가 궁금할 거 같았으면 그때 바로 잡았어야지.

이젠 늦어도 늦어도 너무너무 늦었다.

욕심도 미련도 다 버리자.

여태껏 사느라 애쓴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기 전에.


얼마 전에 영화 '청춘'을 보며 PJ는 생각했다.

청춘이라서 그럴 수 있고 청춘이라서 모를 수 있고

청춘이라서 불태울 수 있고 청춘이라서 상처줄 수 있었던 거라고.

청춘이니까 용서하라고.

청춘

https://naver.me/FgiioqFk


#청춘일기 #소설 #PJ이야기 #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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