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샤 Oct 27. 2023

1% - 용마산공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bgm. 지구본(地球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OST) by 요네즈 켄시


나의 100일 등산 여정의 첫 시작은 서울시 동작구에 있는 용마산 공원이다.

찾아보니 서울에는 '용마산'이라는 산이 두 개인 것 같기도 한데, 하나는 우리 동네 뒷산인 동작구의 용마산이고, 다른 하나는 중구에 있다. 나중에 중구의 더 큰 용마산에 가보고 어쩌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여쭤봐야겠다.
나무와 하늘!

높은 가을 하늘. 올 한 해 나의 목표 중 하나는, 사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계절의 변화에 둔해졌기 때문이다. 요즘 날씨는 그 다짐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해 준다.


퇴사 후 나는 그 누구보다 게으르게 지냈다. 꾸준히 하던 운동도, 공부도 내게 부끄러울 정도로 하지 못했다. 이렇게 살려고 퇴사한 게 아닐 텐데, 루틴이 없어지는 삶이 그렇다. 죽어있는 기분이었다. 머리 쓸 일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할 일도 딱히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100일간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시작을 가을 하늘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할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강아지 산책으로 자주 갔던 용마산 공원


용마산 공원은 계단을 몇 번 오르면 도착할 수 있는, 왕복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등산길이다. 강아지 산책을 하러 간 적이 많았기 때문에 초행길도 아니었다. 평소와 달랐던 점은, 내일 공원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과학 행사가 열리고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있었다는 것이다. 공원을 빙 둘러 설치된 부스와, 분주히 움직이는 공무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내 앞에 놓인 크고 작은 일들을 하는 것, 지인들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 것, 계절의 온도와 습도를 누리는 것.


어제 10년 지기 친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았다. 하야오 감독은 자신이 겪었던 소년의 모습을 주인공인 마히토에게 투영했다. 이전 하야오의 작품들과 달리 마냥 긍정적이고 환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지럽고 난해했다.


하야오 감독이 투영된 주인공, 마키 마히토 (주술회전 마히토 생각난 사람 손 내려)

신작을 주제로 한 유일한 인터뷰에서 하야오 감독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소년의 안에 담긴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물론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추한 감정과 또 갈등도 있겠죠.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힘차게 넘어갈 수 있을 때, 드디어 세상의 문제들과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살아야겠다. 살아있어야겠다.


내가 보잘것없다고 느껴도 포기하면 안 되겠다. 한 때 수동적인 사람들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들도 보이는 모습이 그랬을 뿐 그들은 절대 수동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수동적인 마음은 더 큰 수동성을 갈망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죽음이 있다. 육체적 죽음이든, 정신적 죽음이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