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행 고속열차 안에서
2019.10.23의 일기.
2학년 올라와서 처음 본 전공 시험을 마치고 아빠를 보러 가는 기차 안이다. 아빠가 펜타곤 출장으로 워싱턴에 오셨다. 기차 안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각자 노트북을 펼치고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다. 아빠의 출장 다니는 모습도 저들의 모습과 비슷할까? 나는 사실 아빠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저 유추해 보는 것뿐이다. 우리 학교 공대에서 석박사 하는 분들을 보며, 아빠도 저런 모습으로 공부를 했겠지 상상해 보는 것. 어쩌면 우리 남매에게 아빠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아빠가 너무나 미스터리 한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실 아빠가 부대 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군사기밀이라나 뭐라나.
내가 컴퓨터분야를 진학한 큰 계기 중 하나는, 재택근무로의 전환이 비교적 쉽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물리적으로 전 세계 어느 곳에 어느 곳에 있던지, 컴퓨터만 있으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나인투파이브 출근보다는, 집에서 아이들의 주양육자인 엄마 역할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실제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느낀 점은, 재택근무와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내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것이지만...)
워싱턴행 기차 안에서 아빠가 해외출장을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도 저렇게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언론에서 봐온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집에서 한 손으로는 세탁기 버튼을 누르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업무 전화를 받는 주부에 가까운 모습보다는, 차갑고 객관적인 태도를 가진 야근하는 여성의 모습에 가깝다. 엄마와 직장인 여성. 둘 다를 잘하는 것은 욕심일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어딘가에서 균형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꽤나 오래 해왔는데,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로서의 삶과 직장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내 미래에도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그저 한쪽에 기울었을 때 나 스스로 시동을 걸 줄 아는 어른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