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지나버린, 그러나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더 어릴 적에 나는 자칭 타칭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는데, 그만큼 책 편식도 심한 사람이었다. 서점의 신간 문학 코너에서 떠나지 않거나 학교 도서관에 파묻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때에는 소설이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몇 번씩 다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몇 인분의 삶을 살았고 그때엔 그게 큰 즐거움이었다.

오랜 친구 중에 나보다 더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에게 신경숙 작가의 <외딴 방>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었다. 두툼한 책의 두께만큼이나 그때의 묵직한 감동과 먹먹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춘기 내 나이 시절부터 시작된 작가의 내적 성장과 그의 생을 담담하게 적은 자전적 소설이기도 했는데, 나는 내가 모르는 세상 밖의 이야기가 달고 쓰고 복잡한 맛일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처음 깨달았다. 나는 주인공이 도시로 나아가기 전처럼 아주 작고 나약하지만, 그처럼 고된 풍파는 겪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소설로 인해 마치 내가 ‘나’가 된 기분으로 오랫동안 그 여운을 간직하게 되었다. 어른의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었고 그전까지 익숙했던 이야기는 청소년의 꿈과 미래를 위해 그저 희망찬 내용이 가득한 허구만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 후로 참 오랫동안 신경숙 작가를 좋아했다. 특히 <외딴 방>을 좋아했다. 대학 시절 소설 분석 과제로 이 책을 택해서 낼만큼. 하지만 요즘에는 어쩐지 소설 읽기가 꺼려진다. 어려서처럼 소설 속 주인공의 세계에 푹 젖어 들 엄두가 나지 않고 그 희비의 쌍곡선 속에선 헤엄칠 자신도 없다. 그래서 요 몇 년 간의 나는 에세이를 더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소소한 일상이 주는 감동을 잊지 않고 싶고 내가 사는 모습이 낯설고 덧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다면 그 속은 그저 잔잔했으면 좋겠다.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함께 할 수밖에 없지만 그 희비의 폭이 그다지 크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꿈을 꾸어본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아, 저 사람 참 재미없게 사는구나 할 테지만 주인공인 내 기준에서 ‘아, 이만하면 난 행복한 사람이지.’라고 느낀다면 그걸로 족하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의 기억을 들추며 그간 잊고 지낸 즐거움이 참 많구나 하고 느낀다. 오늘은 그 시절의 소설책을 다시 펼쳐 보며 잠깐이라도 그 좋았던 시간에 물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