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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쏜 Feb 09. 2019

제주엔 재주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 플리마켓

제주 플리마켓/32x32cm/한지에 채색/2017 by.루씨쏜


외국에 가면 자유로운 분위기의 플리마켓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문화가 한국에도 생겨났으면 했는데 제주에도 멋진 플리마켓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세화 해변에서 열리는 벨롱장이다. ‘불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이란 뜻을 가진 제주어 ‘벨롱’ 이란 이름처럼  푸른 바다 앞, 날 좋은 토요일에만 반짝 열리는 장이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혹은 추워지면 만나볼 수 없는 아주 아주 제한적인 마켓이다. 흔하지 않아야 귀하다 했던가. 날 좋은 토요일이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에 들르곤 한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멋진 수공예품과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 좋지만 무엇보다 나는 활기차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러 간다. 파란 세화 바다를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셀러들을 보는 재미도 있고 가끔 음악 공연이나 사주를 봐주는 사람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들도 볼 수 있어 무척 재밌다.

중국산 제품들과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무언가를 하나씩 손으로 만들어 판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이들에게 구매자들을 만나게 해 주고 소통하게 하는 게 플리마켓의 역할이다. 제주엔 제법 그것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묘한 동질감도 느껴지고 힘이 난다. 


나도 딱 한번 플리마켓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종종 강정마을 평화센터 앞에서 주민분들이 갓 잡아 온 생선을 파는 '바리장'이 열린다. 강정 국제평화 영화제를 기념하여 생선뿐 아니라 다양한 것들을 함께 판매하는 플리마켓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위해 직접 만든 책과 그림을 팔았다. 평화 영화제답게 분위기는 평화를 노래하는 분위기였다. 모두가 웃고 있었고 햇살은 따뜻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마을은 여전히 평화롭고 조용했다. 욕심내거나 서두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장 같았다. 아프리카 구호 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청년은 책과 그림 모두를 사곤 수고가 많다며 음료까지 건네주고 갔다. 동백꽃 그림을 좋아한다던 일본 도예가님은 제주 동백이 그려진 내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시면서 사가셨다. 한 노신사분께서 훌륭한 일을 한다며 어깨를 토닥여 주시곤 그림을 하나 사가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닉네임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선생님이셨다. 옆 셀러의 판화 그림이 마음에 들어 샀더니 그녀는 그 돈을 도로 내게 내밀며 내 그림을 사 갔다. 팔려고 나왔다가 받고만 가는 이상한 마켓이었다. 테이블도 없고 의자도 없어서 땅바닥에 남편과 함께 쭈그려 앉아있었지만 내 생에 가장 즐거웠던 '장사'로 기억된다.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살 수는 없다. 절대적으로 좋은 직업이라던지 좋은 삶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엔 대기업 사원도 있고 공무원도 있지만 이렇게 자신의 감각과 재주를 이용해 무언갈 만들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보며 느끼는 건 세상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이었다.자신의 방법대로 그들은 그 안에서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찾는 이 들이 많다는 건 무척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제주엔 재주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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