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일곱 살이 되던 해 휴가지를 스위스로 정한 건 유럽을 사랑하는 엄마 취향, 산을 좋아하는 아빠 취향, 놀이터를 좋아하는 딸 취향이 모두 반영된 결과였다. 아이가 이제는 10시간 이상의 비행도 견뎌줄 것이라 믿었고, 임신한 후부터 8년 동안 유럽과 절연했던 터라 내 인내심도 슬슬 바닥이 보였다. 반드시 가고 말겠노라는 각오로 전년 11월에 다음 해 7월의 스위스 항공권을 구입했다.
반년도 더 넘게 기다려 떠난 스위스. 여행 4일 차가 되자 시차 적응이 끝나 기상 시간은 스위스 시계에 맞춰졌고, 컨디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날씨도 완전히 우리 편이 되어 회색빛이 가득했던 하늘은 흠 하나 없는 파란색만 품었다.
아침 7시 5분, 이른 시간임에도 몸도 마음도 가볍게 기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그린델발트였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면 자는 것은 자동반사였다. 서둘러 숙소를 나서면서도 잠이 아쉽지 않았던 건 기차에서 자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눈은 자꾸만 더 커지려 했고, 입은 감탄사를 연발하느라 다물어질 줄 몰랐다. 카메라에 올려진 손도 쉼 없이 움직였다. 너무 많이 찍어서 그만 찍어야지 멈칫했다가도 눈앞의 풍경에 나도 모르게 촬영 버튼을 눌렀다.
스위스를 생각하면 떠올랐던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 산이 그대로 비치는 에메랄드빛 호수, 호수 가까이에서 연둣빛으로 시작해 하늘을 향하며 점점 짙어지는 초록빛의 산, 융단 카펫 같은 풀밭에 그림처럼 자리한 나무집들을 보며 만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떠올랐고, 영화 에델바이스가 재생됐다.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제공하는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개를 살짝 흔들어보기도 했다.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기차에서 바라본 스위스는 스위스 일부일 뿐이었다. 그린델발트에서 내려 곤돌라를 타고 도착한 피르스트에서도 스위스의 아름다움은 계속됐다.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하늘, 싱그러움 그 자체인 풀밭, 파란 하늘과 초록 풀밭을 이어주는 갈색 지붕, 거기에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는 알프스의 설봉들. 여기까지는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과 비슷했지만 피르스트는 한 가지를 더했다. 노란 들꽃이 현실을 동화로 만들었다.
기차에서는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고 피르스트에서는 가까이서 볼 수 있기에 알아채는 들꽃일지 모르지만, 자연 깊숙이 들어온 기쁨을 만끽하며 오감을 한껏 열었다. 반짝이며 닿아오는 햇빛에서 바짝 마른빨래의 고소한 냄새가 났다. 밀려드는 숲 향기가 발걸음을 통통 띄웠다. 지금 보이고 느끼는 모든 것을 그대로 내 안에 박제하고 싶었다.
피르스트는 내가 스위스 여행에서 제일 기대하던 장소였다. 트래킹 때문이었다. 바흐알프제로 가서 호수에 비친 알프스를 가까이에서 보겠다는 의지였다. 동화를 더 동화로 만들어줄 트래킹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어른 걸음으로 왕복 2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길이 험하지 않아 아이들이 더 잘 걸었다는 후기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즈음 북한산 둘레길도 곧잘 걷던 아이였기에 아이는 엄마의 열망을 지켜주리라 생각했다. 내 열망 사수를 희망하며 아이의 열망도 지켜주었다. 걷는 내내 아이가 원하는 역할 놀이를 했다. 공주가 되고, 가수도 되고, 악당도 되며 아이가 원하는 역할은 그 무엇이든 척척 해주었다.
앞장서서 걷던 남편이 되돌아오는 한국인에게 물었다. 얼마나 남았느냐고. 저 너머냐고.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는 말에 남편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돌아봤다. 그 눈빛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전혀 모르는 척 계속 가자고 우겼다. 그래, 우긴 것이 맞다. 조금씩 느려지는 아이의 발걸음에 나 역시 불안에 흔들렸으니까. 그래도 로망인데, 다시없을 기회인데 아이가 힘내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잠깐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나선 길. 아이는 갑자기! 정말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손을 엉덩이에 가져다 대고서는 응.아.가.마.렵.단.다. 분명히 출발 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조금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이럴 노릇인가. 이대로 가만두면 곧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 로망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 남편은 아이에게 참아야 한다고 다짐을 받으며 아이를 목말 태웠다. 그리고 실망한 빛을 감출 수 없는 내 앞을 지나 성큼성큼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화장실을 향해 질주하는 목말이 그림같이 보이는 건 웬 말인가. 알프스 설봉을 향해 걸어가는 부녀의 모습이 음소거를 하고 나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현실은 ‘언제 도착하느냐’와 ‘조금만 더 참아라’의 실랑이였지만. 처음에는 꽁한 마음으로 투덜거리며 남편의 뒤를 바짝 따라가다 조금씩 거리를 넓혔다. 이 근사한 풍경을 빠른 속도로 삼켜버리기가 싫었고, 거리를 두고 걸으면 남편과 딸의 실랑이가 들리지 않아 풍경을 풍경답게 즐길 수 있어서이기도 했다.
내가 화장실 앞에 도착하니 이미 개운하게 볼일을 마친 아이는 다시 싱글벙글했다. 다시 팔랑거리며 사뿐사뿐 걷는 아이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이 일을 핑계 삼아 다시 오면 되지. 다시 올 구실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철없는 나 역시 기분이 좋아져 싱글벙글했다. 지금 유일하게 웃을 수 없는 사람은 아이를 목말 태우고 꽤 긴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와 지친 남편뿐이었다.
딸의 닉네임을 하이디로 정하게 된 이유“고생했어. 좀 아쉽긴 하다.”
“화장실 아니었어도 끝까지 못 갔을 거야. 하이디가 얼마나 찡찡댔겠어. 잘 돌아온 거야.”
“이번에 돌아온 건 다시 오라는 계시야. 하이디 좀 더 크면 다시 오자.”
내 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남편.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내가 안다. 다시 오겠다는 계획이 실현 불가능할 거로 생각하지만, 분명 본인도 다시 올 수 있다면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인 거다. 북한산 날다람쥐라는 별명이 있는, 산을 그리도 좋아하는 남편이 보지 못한 풍경을 아쉬워하지 않을 리 없었다. 호수에 비친 알프스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데 말이다. 부정하지 않은 남편에게 팔짱을 끼며 꼭 다시 올 것을, 꼭 다시 이 길을 걸을 것을 다짐했다. 지금 우리 앞에서 요리조리 뛰고 있는 저 아이에게도 꼭 같이 다시 걷자고 굳센 눈빛을 보냈다.
모든 사진은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