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토박이가 내게 말했다. 그러게, 이십 년을 서울에서 살다 제주에서는 고작 사 년을 살았을 뿐인데 나는 왜 서울이 힘들까. 제주가 내게 사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진정 내가 우선하고 싶은 가치를 우선해 살고자 직접 선택한 장소이다 보니 제주는 내게 주도적인 삶을 완성하는 배경이었다. 살면서 실망하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서울로의 복귀를 떠올려 봤겠지만 살면 살수록 제주는 더 좋아지기만 했다. 상황이 닥칠 때까지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미룰 만큼. 그 만족감을 고스란히 드러낸 기록이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였다.
브런치에 발행했던 글이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에 수록되기도 했지만, 그대로는 아니었다. 퇴고하고 퇴고하고 또 퇴고해서 내놓았기에 글이 내게 새겨져야 책이 됐다. 책에는 안쓰럽고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 시절을 지나 여유를 누리게 된 삶에 마침표가 찍혔다. 물론 그 여유의 배경은 제주였고. 그러니 내게 제주는 주도적인 삶을 완성하는 배경임과 동시에 여유의 상징으로 새겨졌다.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는 작년 10월 31일에 출간됐고, 나는 2월 1일에 제주를 떠났다. 세 달은 이별의 시간으로는 너무 짧았다. 게다가 출간 이후 북토크를 하며 나는 매번 주도적인 삶과 제주를 연결해 말했다. 글을 쓰며 새겨진 제주는 말을 하며 더 진해졌다. 물론 독자들에게 '하지만 곧 서울로 돌아가요. 서울에서도 제주에서처럼 살려고요.'를 덧붙였지만 그 말에는 활짝 웃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눈동자를 꽤 여러 번 깜빡였을지도 모르겠다. 확신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숨기려 했기에.
돌아온 서울은 못마땅한 것 투성이었다. 복잡한 도로, 넘치는 사람, 거슬리는 소음, 시야를 차단하는 고층 건물, 답답한 공기, 뿌연 하늘. 이런 환경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경쟁과 무리가 당연한 일상도 문제였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아도 아이가 그렇게 사는 게 나를 갈등하게 했다. 다른 아이들만큼은 아니라고, 무엇도 안 시키고무엇도 안 시킨다고 합리화해 보지만 아이의 하루는 너무 빡빡했다. 내 삶의 우선순위는 분명하면서 아이 삶에 대해서는 흔들리는 우선순위도 못마땅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힘이 셌다. 못마땅한 것 투성인 서울에서 새로운 도전마저 흔들렸다. 공저 책 한 권과 단독 책 한 권의 에세이를 썼으니 이제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제주에서부터 비대면으로 소설 수업을 들었고 서울에 와서도 이어듣고 있다. 처음 써보는 소설은 당연히 쉽지 않다. 쓰다가 뒤엎는 일도 잦고 쓰면서도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는다. 키보드는 불확실 사이를 두드린다. 그래도 엉덩이의 힘을 믿고 묵직하게 써야 하는데 백지를 띄워놓고 멍하니 방황하는 날이 잦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마음 살피기였다. 못마땅한 것 투성인 일상에서 마땅함으로 나아가는 힘이 필요했다. 부정적인 마음을 거둬들이는 것은 마음을 다독이는 것부터 해야 했다. 문제는 제주에서는 익숙하던 마음 살피기가 서울에서는 잘 안 된다는 것. 찬찬히 골똘히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조급함이 자꾸 끼어들었다. 휘둘리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렸던 남들 말이 마음에 남아 나를 흔들었고, 나에 대한 의심이 마음을 구겼다. 흔들리고 구겨진 마음은 외면을 불러와 서울도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2월에 제주를 떠날 때 4월에 제주에 놀러 오겠노라 공언했다. 4월 14일로 예정됐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행사는 4월 28일로 옮겨졌는데, 그날은 딸에게 중요한 일정이 있다. 내가 꼭 참석해야 하는. 그렇다면 제주행을 포기할 만도 하건만 내게 제주에 오지 않겠다는 선택은 없었다. 제주에서라면 지금 상황에 대한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제주는 주도적인 삶의 상징이니 주도적인 해결책 역시 제주가 주리라 믿었다. 제주에서는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롭게 내 마음을 살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제주에 왔다.
내 판단은 맞았다. 주말 일정이 조정이 안 되는 딸과 딸의 보호자인 남편을 서울에 두고 홀로 제주에 와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제주행은 옳았다. 바다가 한눈에 들여다 보이는 루프탑 카페에 홀로 앉아 있으니 울컥 눈물이 솟았다. 서울이 싫고 제주가 그립다고 하면서도 한 번도 울지는 않았는데 제주에 오니 눈물이 흘렀다. 쓱쓱 두 번 닦고 나니 그친 눈물이었지만 눈물 끝에 답을 찾았다. 지금까지는 내가 여유롭게 살기 위해 나의 여유를 계획하고 실천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딸이 여유를 누릴 수 있도록 딸의 여유를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바쁜 일과를 싹 지워줄 수는 없지만 여유를 틈틈이 채워주겠노라 결심했다. 환경은 바꿀 수 없으니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해보기로. 내 안의 갈등을 하나 줄이고 나면 그만큼의 부정적인 생각은 덜어지겠지. 그렇게 하나씩 먹구름을 덜어내고 나면 청명한 마음이 다시 드러나겠지. 제주 바람을 맞으며 마음에도 먹구름을 밀어낼 바람이 불었다.
제주에 한 번 다녀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건 안다. 나도 몰랐던 문제들이 새로이 생겨날 것도 안다. 하지만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마음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이면 이렇게 다시 제주에 오면 된다는 것을. 자주 오겠다는 다짐이라기보다 자주 올 수 있는 곳으로 제주를 여기는 마음가짐이 내게 버팀목이 되어줄 테다.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를 퇴고하며 제일 자주 찾았던 카페에 와서 이 글을 쓴다. 이번에는 '제주에서 여유롭게' 대신 제주를 떼고 '나도 딸도 여유롭게'를 마음에 새긴다. 이 글도 바로 올리지 않고 퇴고를 한 번 더 하고 올린다. 더 짙게 새겨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