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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Apr 04. 2024

소란한 제주의 봄 vs 조용한 서울의 봄

제주의 4월은 내 생일 무렵부터 시작됐다. 내 생일은 3월 22일. 이 무렵이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현수막이 걸렸다. 매년 문구는 조금씩 달랐지만 주제는 하나, '제주 4.3'이었다. 학교에서는 현수막을 거는 것으로 기억 되새김을 끝내지 않았다. 가정 통신문에도 '제주 4.3'을 알렸다. 4.3 교육주간을 지정해 다양한 수업으로 '제주 4.3'을 기억하겠다는 안내였다. 관련 책을 함께 읽고, 다양한 소재로 동백꽃을 만들고, 유적지로 체험학습을 가고, 유족분을 학교에서 만나기도 했다.


활짝 웃을 수는 없다는 아이

제주살이가 3년 되던 해에는 학교에서만이 아닌 가정에서도 4.3 교육주간에 동참하겠노라며 딸과 함께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갔다. 입구의 커다란 동백꽃 전시물 앞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죽음을 상징하는데 웃기가 좀 그래."라고 아이는 학교에서 배운 '무명천 할머니'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엄마는 상상이 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라고 주먹을 꼭 쥐면서.


평화와 인권을 배우는 4.3 교육주간의 힘을 선명하게 느낀 건 작년 가을이었다. 이태원 참사 1주년 무렵, 성당에서 초등부 4학년 주일학교 교리교사였던 나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림을 그리는 수업을 준비했다. 도로를 꽉 채운 사람들을 그린 아이, 눈물방울로 종이를 가득 채운 아이, 십자가를 그린 아이 등 각기 다른 그림 사이로 붉은 동그라미가 가득 채워진 그림이 있었다. 가만히 들어다 보니 붉은 동그라미 가운데는 노란 점이 있었다.


"제주 4.3 상징이 동백꽃인데 잘못 없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 비슷해서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동백꽃으로 표현했다는 아이. 이 아이를 비롯해 '제주 4.3'을 배우고 기억하는 아들에게서 평화와 인권을 소중히 여길 든든한 미래를 엿봤다면 너무 앞서가는 기대일까.


학교에서만 '제주 4.3'을 알리는 것은 아니었다. 3월 20일 무렵부터 제주는 온통 '제주 4.3'의 옷을 입었다. 학교, 관공서, 도로에 '제주 4.3' 현수막이 걸리는 것은 물론 도서관과 서점에서도 '제주 4.3' 관련 책 전시를 하거나 '제주 4.3'을 기억하는 행사를 운영했다. 벚꽃 한껏 피는 봄의 설렘 사이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아픔의 역사를 채워 넣었다. 분홍빛 가득한 아름다움이 핏빛 아픔을 딛고 피어났음을 상기시켰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도록 시선 곳곳에 '제주 4.3'이 들어왔다.


올해 내 생일은 서울에서 맞았다. 그 어디에서도 '제주 4.3'을 찾을 수 없었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 선거 현수막으로 도시가 들썩이는 것은 맞는데, 그 사이에 어느 하나 '제주 4.3'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아픔이 남아있는 역사인데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뉴스에서는 추념식을 가네, 마네의 이슈가 소개되기는 했지만 모두의 기억에 닿기에는 너무 짧았다. 특히 아이들에게 닿기는 어려워 보였다.


4월 3일이었던 어제, 학교에 다녀와 간식을 먹는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며칠이지?"

"4월 3일. 아, 제주 4.3이네. 모르고 지나가 뻔했어."


서울은 조용하더라도 우리는 함께 기억했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살, 네 살 아기들도 희생됐다는 걸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엄마도! 아마 평생 그 누구도 믿기 힘든 일일 거야. 믿기 힘들어도 정말 있었던 역사니 더 기억해야 하는 거고." 


아이는 간식을 다 먹고 방으로 들어가며 한 마디를 남겼다.


"엄마, 4월 16일에도 나한테 며칠이냐고 물어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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