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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아침에 다정을 바라지 마세요

by 여유수집가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 남편이 아침형 인간인지. 늦게 자고 출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평일에 부족한 잠을 주말에 몰아서 자야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주말에도 일찍 일어났다. 남편을 꼭 닮은 딸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바이오리듬까지 닮아 아침형 아이였다. 나의 소중한 주말 늦잠을 부녀는 어김없이 방해했다.


저녁형 인간인 나의 반대편에서 똘똘 뭉쳐 아침을 활기차게 보내던 부녀가 갈라섰다. 여전히 아침에 즐거운 남편과 달리 딸이 아침에 까칠해졌다. 잘 잤냐고 다정하게 묻는 아빠의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볼을 비비려 다가오는 아빠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팩 돌리고, 하루 일정을 묻는 아빠의 질문에 '신경 쓰지 마'라고 했다. 분명 저녁이면 먼저 아빠에게 인사하고 안아달라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치대면서 아침이면 딸은 가시 갑옷을 입은 마녀가 됐다.


딸의 이중생활로 남편은 자기 전에 딸에게 당부했다.


"내일 아침에는 아빠한테 다정하게 좀 해줘."

"노력해 볼게."


밤의 다짐은 자는 동안 지워버리고 어김없이 아침이면 마녀가 되는 딸이 가족 단톡방에 링크를 공유했다. '이거 꼭 봐야 해'라는 말과 함께. '사춘기 자녀가 아침에 예민한 이유'라는 영상이었다. 사춘기에는 수면 유도 호르몬이 밤늦게 발생해 늦게 잠드는데 수면 리듬을 무시하고 일찍 일어나게 되니 아침이면 예민 보스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어, 봤어. 그래서 아침에 선유도 까칠했구나.

- 이해해 주라.

- 무조건 이해할게요. 아빠가 그동안 무지했네.


영상을 본 남편과 딸의 대화에 아침마다 둘 사이를 중재하던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서운해하는 남편에게 딸 편을 들고, 까칠한 딸에게 아빠 편을 들지 않아도 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남편의 아침 에너지는 예상보다 강했다. 무조건 이해한다던 다짐은 며칠을 가지 못했다. 다시 남편은 아침에 딸에게 다정을 바랐다.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히 남편이 옳다. 다정한 말로 마음을 나누고 온기를 채워 아침을 시작하면 더 힘찬 하루가 되니까. 특히 딸의 애정이 아빠에겐 무적 파워가 될 테니. 그래도 지금 딸은 사춘기가 아닌가. 사춘기는 상식이 상식임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상식이 아닌 행동을 하는 시기인데 말이다.


20160102_163321.jpg '엄마' 아닌 '아빠'하고 울던 딸

아직은 아침에만 까칠한 딸을 남편이 좀 내버려 두면 좋겠다. 성장통이라 이해하면서. 그렇다고 내게 지금보다 더한 다정을 바라면 그것도 좀 곤란하기는 하다. 여전히 저녁형 인간인 나는 아침에 에너지가 제일 없는 사람으로 딸 비유 맞추기도 쉽지 않으니까. 딸이 먼저 '잘 잤어?' 인사를 하기까지 아침의 다정은 저녁으로 미뤄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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