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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아 그림아 보여주렴!

슬기로운 어린이집 생활 5

by 달빛서재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찰나의 멈춤, 그다음 내 시선은

스케치북 속 그림으로 옮겨간다.


'가족이 네 명 인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러나 아이가 그린 스케치북 속 인물은 세명이었다.

엄마, 아이 그리고 동생까지.


미술 활동 시간이었다.

이번 주제는 '우리 가족'

아이들은 원하는 그림도구를 선택한

저마다 자유롭게 표현해 보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집 강아지도 그려도 돼요?"


"선생님, 우리 엄마는 흰색 치마 입는 거 좋아한다요."


"선생님 이거 보세요! 저 엄청 잘 그렸죠?"


왁자지껄 저마다 밝고 쾌활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조용히 스케치북 속 세상에 빠져있었다.


"가족이 다 같이 나오는 그림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선생님의 권유에 잠시 망설이던 아이는

스케치북 한쪽 구석에 자그마한 크기로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빠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연달아서 그리는 그림 속에서

아빠의 앞쪽에는 티브이가 있었다.


"아~아빠가 티브이 보는 거 좋아하시는구나?"


선생님의 이야기에 웃음기 없는 얼굴로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아이였다.

늘 그래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반짝이는 교실 속에서

평소 아이에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자신감 없는 태도와 무표정,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듯한 이질감이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거친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았지만,

관심을 가진다면, 분명 알 수 있는 신호였다.

아이의 마음속 외침과 울음을.




아이의 어머니와 부모 상담을 하며

가정에서 가족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안 좋은 예감은 적중했다.

아이의 엄마 아빠는 평소 다툼이 자주 있었고,

유난히 아빠의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아빠는 평일엔 늘 퇴근이 늦었고,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틈이 나는 시간에는

티브이나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 또한

아이의 그림을 보며 예상한 대로였다.

아이의 안정되지 못한 불안한 마음은,

어린이집에서 여과 없이 그대로 새어 나왔다.


하지만 엄마가 가정에서 바라보는 아이는

늘 모범적이고 반듯했으며,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잘 해냈다.

동생을 다정하게 잘 챙겼고,

엄마가 바빠 보이면 집안일도 척척 도왔다.

그래서였을까?

부모는 아이의 표정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대화를 통해 아이의 짜 속마음을 들여다볼 이유를

굳이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내면세계는 의도치 않게 그림에서 많이 드러난다.

물론 애착 중심인물이 엄마라면

자연스럽게 엄마 중심으로 그림을 그릴 순 있다.

그러나 아빠가 바쁘거나 집에 있는 시간이 적으면

아이 입장에서는 익숙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

그림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빠에게 실망했거나 무서운 경험이 있었다면

의식적으로는 괜찮아 보이더라도

무의식적 감정이 반영되어

아이의 그림 속에서 아빠는 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의 그림 속에 담긴 심리적인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사람(가족) 그림


ㆍ특정 가족만 크게 그린다.

그 사람에 대한 애착이 크거나 의존적인 상태


ㆍ아빠나 엄마를 생략한다.

거리감. 무관심. 잠재적 불만이 있는 상태


ㆍ자기 자신을 유난히 작게 그린다.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위축된 상태


ㆍ가족 사이 간격이 멀다.

정서적 거리감 있는 상태


ㆍ손을 잡고 있거나 가까이 있다.

안정감. 유대감 있는 상태


2. 그림 해석 시 주의할 점


ㆍ아이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그림을 다르게 그릴 수 있다.

한 장의 사진으로 단정 짓기보다 여러 그림을 비교해 보며

전체적인 흐름으로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


ㆍ아이와 그림을 보며 대화를 해본다. 아이의 말로 확인하는

해석이 가장 중요하고 정확하다.


"이건 누구야?"

"이 사람은 어떤 기분이야?"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ㆍ결과물을 보고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왜 엄마는 안 그렸어?" (X)

"이 그림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ㅇ)


아이의 그림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다.

아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그림으로 표현한다.


"아이의 그림 속에 내 모습은 없어도 크게 상관없거나,

혹은 티브이나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길

원하나요?"


이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답한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오늘 하루만큼은 핸드폰, 티브이와 거리 두기를 하고

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하루에 단 10분이어도 좋다.

일단 시작해 보는 거다.

아이와 오늘의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이야기 나눈다.

때론 스케치북이든 연습장이든 펼치고,

생각과 감정을 마음껏 표현해 보도록 격려해 준다.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사랑과 공감이 담긴 따뜻한 마음이

'우리' 안에 고요히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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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