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이 내게 가르쳐준 것
23살쯤이었을까. 한 달간 동생과 함께 유럽 여행을 했었다. 학생 때 적은 돈으로 했던 여행이라 14시간 넘게 버스로 이동하고, 사진과는 달랐던 낡은 숙소에서 자거나, 남의 집에 얹혀 자기도 하며 기분 나쁜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유럽여행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걱정 없이 돈을 쓰며 놀 수 있는 날이 또 올까 싶다. 동생과 나는 아직까지도 “그땐 진짜 재미있었어”라며 그리워하곤 한다.
사실 내 주변엔 여행에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 돈을 쓰는 만큼의 재미를 못 느끼겠다는 것이다. '재미'란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나 느낌, 그리고 좋은 성과나 보람을 뜻하는데, 재미를 느끼면 내적 동기가 유발되기 때문에 외적인 보상이 없어도 해당 활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결국, 재미란 스스로 즐겁게 몰입해서 보람을 느끼고 좋은 성과를 만드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때의 유럽 여행을 그렇게 재미있어 했을까? 그 때의 기억을 톺아보며, 앞으로 걸어갈 험난한 생존의 길에서 재미를 지속할 실마리를 찾아본다.
우선, 목적지가 있었다. 여행할 국가와 도시를 이미 다 정해 두었고, 교통수단과 숙소도 예약해 둔 상태였다. 몸만 가면 되는 상황이기에 불안감보다는 기대감이 컸다. 만약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발 닿는 대로 갔다면 설렘보다 막막함이 앞섰을 것이다.
둘째, 원하는 대로 계획했다. 가보고 싶은 국가와 예산을 고려해 직접 여행 동선을 짰다. 수많은 블로그, 카페, 주변 지인을 총동원해 여행 정보를 모았다. 직접 만든 계획 안에서 여행하니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셋째,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 나는 리투아니아에서 교환학생을 마친 직후였기에, 여행에 필요한 영어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길을 잃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고,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괜찮겠다 싶었다. 그 덕에 낯선 환경에서도 크게 겁먹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넷째,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유럽 곳곳의 풍경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광장을 지나 아름다운 건축물 사이 구석에 자리 잡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는데, 음식의 맛을 떠나 그 경험 자체로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동생과 함께였다. 여행은 함께할 때 더욱 생생해진다. 예쁜 거리를 걷다 보면 풍경에 눈이 멀어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긴 이동에 지쳐 서로 투덜대다가도 엽기 사진을 찍으며 깔깔대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하루 끝 숙소에서 마무리하는 순간들도 소중했다. 함께 공유한 시간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는다.
유럽 여행이 재미있었던 이유를 돌이켜보면, 목표, 자발적 결정, 몰입, 준비, 자신감, 새로움, 호기심, 공유 같은 요소가 여행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 있었다. 앞으로 내가 해 나갈 일에서도 이 요소들을 잘 발견하고 활용한다면, 결과에 대한 압박보다는 과정에서 재미를 찾으며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