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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사용법

두려움과 공존하며 나아가려면,

by 루씨


번역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후 나를 가장 괴롭힌 건 ‘두려움’이었다. 하긴 회사 생활을 할 때에도 두려움은 늘 따라다녔다. 낯선 프로젝트의 시작, 성과 평가, 일의 적성 등에 대한 막연한 고민은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과 분주한 업무로 애써 외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퇴사 후, 꽁꽁 덮어두었던 두려움은 더 자주 고개를 내밀며 나를 가로막았다. 일정하지 않은 수입, 선택에 대한 불신, 혼자 해내야 한다는 막막함 등 두려움은 온갖 이유를 만들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예전 같았으면 또 일부러 바쁘게 지내며 외면했을 테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했다. 어차피 이놈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함께 가는 법을 연습해 본다.





불규칙한 수입

수입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뇌는 불규칙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생존과 직결되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워진 마음으로 벌벌 떨며 업계 동향을 살피다 보면 부정적인 정보가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이 길을 계속 걸어도 괜찮을까?’, ‘업계 전망은 어떤가?’와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불안은 서서히 내게 스며든다.



하지만 두려움을 그 자체로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두려움을 느껴야 미리 대비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다루느냐다.



번역가로 업계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전까지는 뇌를 안심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능하면 고정 수입원을 마련하고, 소비를 조절하며, 경제적 안전망을 쌓아가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고정 수입을 위해 번역과 무관한 일을 하다 보면 번역이 뒷전이 될 수 있고, 번역에만 몰두하다가 안정적인 수입원을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겠지. 중요한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손에 쥔 방향키를 놓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두려움은 위험을 피하거나 속도를 조절하라는 신호가 되어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내 선택에 대한 불신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세운 기대를 저버린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끝까지 가지 못했거나, 남의 평가에 흔들렸던 순간이 쌓일수록 벽이 허물어지듯 나에 대한 믿음도 점점 무너진다.



하지만 혹시 내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남의 기대를 내 것처럼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기대가 나를 짓누르지 않으려면,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세운 목표였는지, 아니면 타인의 기대를 내 목표인 마냥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말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의 이상과 기대를 동경하며 마치 내 목표처럼 여긴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해내지 못하면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 여겼다. 문제는 그 기대 자체가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인 데도 말이다.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 방식은 고려하지 않고 남의 기준에 맞추려 했기에 기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기준을 찾는 것이다. 남의 기대를 좇기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하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 걸음씩 쌓아 올리는 과정이 곧 나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연습이 되지 않을까. 나만의 속도로 나아갈 때, 기대는 더 이상 나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나를 밀어주는 연료가 된다.




부족한 끈기

초반에 열정이 타오르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를 잃고 손을 떼는 경험이 종종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다 보면 ‘나는 끈기가 부족한 사람인가?’라는 의심이 든다. 끝까지 해내지 못한 순간이 쌓일수록, 스스로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끝맺음을 잘하는 것은 단순한 끈기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호기심이 강한 편이므로, 단순히 번역 공부만 하거나 일감을 찾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관련 강의를 듣거나 업계 사람과 소통하면 흥미를 갖고 지속할 수 있다. 또한, 내가 브런치에 꾸준히 여정을 기록하는 이유도 스스로를 다잡고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제는 시작할 때의 강한 의지나 열정보다도, 잔잔하더라도 꾸준히 지속하는 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함을 만들어가며, ‘끈기 없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해내는 사람’으로 나를 재정의하고 싶다.





물론 아직은 초심자의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막연히 두려워했다면, 이제는 두려움을 나침반 삼아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가 낀 반지가 길을 보여주듯, 두려움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또 다른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하지 않고 함께 걸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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