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두는 편안함
나는 실력 있는 번역가로 자리 잡고 싶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더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좀 더 연습하고 공부한 후 준비가 되면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얼마나 연습해야 준비가 끝나는 걸까? 실력 있는 번역가들은 얼마나 연습한 후에 업계에 뛰어들었을까?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야 ‘준비됐다’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누가 이만큼 연습하면 실전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정해 준다면 맘이야 편할 텐데.
혼자 하는 연습은 편안했지만, 도전하는 데는 걸림돌이 되었다. 마치 짝사랑만 하던 사람이 고백을 망설이는 것처럼.
나는 왜 준비만 하며 실전을 뒤로 미루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들킬까 봐 그랬다. 부족한 실력이 드러날까 봐.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번역하겠다고 한 거냐며 망신당할까 봐.
지원하지 않으면 떨어질 일도 없다. 번역 테스트를 보지 않으면 떨어져 낙심할 일도 없다. 고객사와 계약하지 않으면 실제로 일하며 생기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필요도 없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면, ‘연습’의 편안함에 머무를 수 있다. 문제는 그 연습이 나를 계속 부족한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는 것이었다. 끝없이 부족한 점을 찾으며,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실력 있는 번역가가 되려면 성장이 필요하고, 성장은 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경험을 통해 일어난다. 그런데 혼자 하는 연습만으로는 그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실전이 주는 긴장감,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즉흥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결국, 직접 부딪히고 부족한 점을 체감하며 고쳐 나가면서 성장해야 했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실전에서는 긴장된다. 예상치 못한 실수가 나오고, 당황스러운 순간도 생긴다. 그만큼 더 집중하게 되고,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된다. 혼자 하는 연습보다 훨씬 질 높은 연습이 되고, 진짜 실력으로 쌓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실전을 연습처럼 하기로 했다. 그간의 번역 경력을 긁어모아 이력서를 수정하고, 약 20개의 에이전시에 지원했으며, 그중 3곳에서 번역 샘플 테스트를 보았다. 샘플 테스트는 실전이었지만, 동시에 연습이기도 했다.
테스트에 떨어져 낙심할 수도 있고, 계약 후에 일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실전을 뒤로 미뤘던 건 연습이 아니라 회피였다. 이제는 부족하다고 느껴도 실전에 부딪혀 보면서 배우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하면, 그때 다시 연습하면서 보완해 나가면 된다.
실전을 연습처럼, 연습을 실전처럼. 이제 더 이상 연습의 덫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