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길
번역은 혼자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번역을 업으로 삼기로 했을 때도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 원문을 읽고 배경지식을 조사하며, 옮긴 문장을 다듬는 건 온전히 내 몫이고, 내가 책임지는 일이다. 하지만 번역을 알아갈수록, 이 일이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번역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이 질문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직장 내에서 번역하던 것과, 번역을 업으로 삼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현업 번역가들은 어떻게 경력을 쌓아가고, 어떤 방식으로 일감을 구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번역가로서 지속 성장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알고 싶었다.
물론 인터넷에서도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정리된 글만으로는 현실 감각을 키우기 어려웠다. 특히 현업 번역가들의 실제 경험과 생각을 듣고 싶었다.
혼자 샘플테스트를 보고, 거래처에 이력서를 돌리면서도 ‘이 방식이 맞을까?’, ‘혹시 시간 낭비는 아닐까?’라는 의심이 나를 어지럽혔다. 물론 어떤 경험이든 배울 점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리며 해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현업 번역가들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어떻게 번역가로서의 길을 시작했는지,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번역을 시작한 사람들의 고민도 듣고 싶었다.
그렇게 2주간 3명의 현업 번역가와 2명의 번역 지망생을 만나게 되었다.
독일 유학 후 한국에서 활동하는 독일어 번역가, 두바이에서 번역 활동을 하다가 연남동에서 빛이 잘 드는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9년 차 번역가, NGO에서 번역을 도맡아 하다가 한국 웹툰을 해외에 소개하는 번역가, 튀르키예에서 14년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무역 컨설팅과 통역 활동을 하는 사업가, 그리고 번역 업계에 가능성을 보고 막 시작한 직장인까지.
다양한 이야기와 경험을 지닌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업계의 현실적인 모습까지 서슴없이 공유해 주었다.
예전에는 네트워킹이 부담스러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명함을 주고받고, 어떻게든 공통분모를 찾아 대화를 이어가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번역을 준비하면서 내 태도가 점점 변한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주저 없이 연락하고 조언을 구했다. 또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사람을 만나니 짧은 대화 속에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나의 고민에 공감하고 조언을 해주면 그 어느 때보다 값진 대화가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은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방향을 잡아주기도 하며,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번역가는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다. 이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는 어디쯤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그 답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의 교류, 네트워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의 연결과 교류를 통해 배우고, 함께 성장해야 하는 것이었다.
결국 번역은 혼자 하는 일이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