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싶은 순간

day-72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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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삼 년 내내 잃지 않은 타이틀이 있었다. 바로 체육부장. 특별히 잘하는 운동은 없었는데 그저 체육부장은 늘 하고 싶었다. 별로 인기도 없는 직책이라 반 친구들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선생님이 체육부장 할 사람, 하고 물으면 번쩍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별 이상한 애를 보겠다는 듯이 체육부장 자리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희망자만 뛰면 되는 체육대회 마라톤에 늘 참가했다. 전교생 중 희망자만 동네 한 바퀴를 달리는데 나는 삼 년 내내 일등을 했다. 문화상품권 때문이었지만, 그 시절 체력은 지금 생각해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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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통 틀어 모든 친구들이 나의 먹성을 인정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급식판에 덜어진 산더미 같은 밥을 제일 먼저 먹어치우는 나를 보고 놀라워했다. 내가 밥을 빨리 먹는 이유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먹어서 그런 것 같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대학교 친구들은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점을 신기해했다. 먹는 내 앞에서 친구들은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놓았다. 그중에 말이 너무 많아서 칼로리를 말하는 걸로 소모하는 것 같다는 주장이 제일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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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먹부심은 대학교 졸업 무렵 와르르 무너졌다. 어느 날 저녁을 많이 먹고 한 번 체했는데, 회복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에도 또 체하고, 이틀 뒤에도 체했고, 결국 일주일 내내 죽만 먹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이후로 평소처럼 뭔가를 먹을 수가 없었다. 평소처럼 먹으면 반드시 체했다. 나는 자주 병원 신세를 졌다. 몇 달째 체해서 병원에 오는 나를 보던 의사가 물었다. 운동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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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별도로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운동은 살을 빼기 위해서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살이 찐 적이 없어서 운동을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운동한 적 없는데요. 마지막으로 운동한 게 오 년 전이네요." 내 대답에 의사가 헛웃음을 지었다. 운동하셔야 돼요. 운동하지 않으면 위장도 운동성이 줄어서 기능이 떨어지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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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평소에 어떻게든 운동을 하기 위해서 애쓰는 편이다. 열심히 한다고 하긴 어렵지만 근근이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20대 초반에 운동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걸 전혀 몰랐던 점이 아쉽다. 고깃값을 걱정하면서 삼겹살을 구워 먹던 시절은 끝나버렸다. 어떻게 그렇게 잘 먹었던 내가 이토록 금세 실종되어버릴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심지어 그 시절 위가 단단히 파업해서, 그때 이후로 평생 갖고 있던 식탐을 잃어버렸다.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점심만 먹어도 저녁까지 소화가 되지 않아서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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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동물의 평균 수명이 38세라고 하던데. 몇 년 뒤면 이 몸뚱이의 평균 수명이 다한다. 스러져가는 체력을 붙잡고 오래 살아가려면 더 건강에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은 살 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십 대 초반의 나는 틀렸지만, 오늘도 요가 매트 위에서 한 시간 구른 나는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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