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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28. 2022

일상의 논어 <자한子罕1>-여명여인與命與仁


子罕言利與命與仁

자한언리여명여인


-공자는 이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고 천명을 따라 인과 함께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고래로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공자는 이와 명과 인에 대해 드물게 말했다. / 공자는 이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았고 명과 인을 따랐다. / 공자는 이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았으나 말할 때에는 명, 인과 함께했다'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평소에는 이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으나 굳이 언급할 때에는 천명과 부합하는 이, 인에 어긋나지 않는 이에 대해 말했다'의 뉘앙스로 받아들인다면, 세 번째 견해를 그나마 인정할 만합니다. 


하지만 저는 굳이 그리 어렵게 풀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와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무엇을 하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가?', 혹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타인과 공동체를 이롭게 할 수 있는가?'와 같이 이의 개념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상관없이 공자는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유의미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란 행동의 결과일 뿐, 사전에 계산할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천명에 순응하여 늘 인하게 살아가는 한 더불어 이롭게 되는 것이니 이를 따로 얘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을 빌려 말하자면 천명에 따라 인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곧 '홍익弘益'이라는 것입니다.  


정부 각 부처가 모두 이의 관점에서 일하기를 요구하는 대통령의 인식이 위험하고 동시에 유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오직 국민과 나라를 이롭게 하는데 전념해야 할 정부 조직이 이익 창출의 관점에서만 업무를 바라보면 공공 서비스조차 시장주의에 함몰되고 말지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예산을 줄줄이 축소, 삭감, 폐지하면서 겉으로만 약자 복지를 떠드는 행태에서 정부의 책임과 역할에 무지한 극단적 시장주의자의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정부 조직이 이익을 좇는다고 국민의 이익이 증대될까요? 무능한 행정과 아마추어 정치가 어떻게 경제를 망치고 나라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드는지, 머지 않아 우리는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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