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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Feb 03. 2023

일상의 논어 <자로子路5>-전대專對


子曰 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

자왈 송시삼백 수지이정 부달 사어사방 불능전대 수다 역해이위


-공자가 말했다. "시 삼백 편을 외워도 정치를 맡기면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들에 사신으로 보낼 때 혼자 감당하지 못한다면, 비록 많이 외고 있다 한들 무엇하겠는가? 



'시삼백'은 <<시경>>을 말합니다. <위정> 편 2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 자왈 시삼백 일언이폐지왈 사무사 - 공자가 말했다.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에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공자는 '생각에 거짓이 없는' 곧 진실성과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장르인 시를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시를 통해 '인생에 거짓이 없는' 경지를 원했을 것입니다. 시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이상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근간이라고 공자는 인식하고 있지요. 이는 시와 예禮와 악樂의 관계성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고: <태백> 편 8장. https://brunch.co.kr/@ornard/1015


그러나 공자는 많은 시를 외우고 있다는 사실과 정신의 함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를 제대로 공부했다면 정치도 잘할 것이고 외교 현장에서도 당당하게 국익에 도움되는 방식으로 협상을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에 대한 깊은 학습과 사유가 선행되었다면 어느 분야에서든 반드시 시의 효용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탁월한 인간의 주조鑄造'입니다. 


시를 공부한다는 것은 언어라는 바위를 깎아 시어라는 돌들을 만들고 다시 그것들을 갈고 붙여서 시라는 옥을 빚는 과정 전반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이해를 통해 군더더기를 버리고 핵심에 육박해 들어가는 능력과 상대를 자극하는 직설 화법을 지양하여 결론으로 가는 길을 우회하되 더욱 강력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길러지기 마련입니다. 공자의 인식대로 시는 예와 악으로 확장되기 때문이지요.


공자는 시를 공부하는 흉내를 내지 말고 깊숙히 파고들라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탁월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전대專對는 남의 물음에 대해 자기만의 지혜로 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실력이 있어 외국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재를 '전대지재專對之才'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외교가 파탄지경에 이른 것은 위부터 아래까지 '전대'의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풍자도 억압하고 진실에 대한 합리적인 탐사도 탄압하는 정부에서 오직 진실성과 진정성을 견지할 때만 획득되는 그것을 갖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거짓과 위선의 탑 속에 제아무리 무능을 꼭꼭 숨기고 감춰도 소용 없습니다. 모래로 쌓아 올린 탑은 저절로 빈틈이 열리는 법이고 일순간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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