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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n 10. 2023

일상의 논어 <계씨季氏11>-은거구지 행의달도

隱居求志 行義達道

孔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吾見其人矣 吾聞其語矣 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 吾聞其語矣 未見其人也

공자왈 견선여불급 견불선여탐탕 오견기인의 오문기어의 은거이구기지 행의이달기도 오문기어의 미견기인야 


-공자가 말했다. "선을 보면 미치지 못할 것처럼 하고 불선을 보면 끊는 물에 손을 넣은 듯이 하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을 보았고 그런 말도 들었다. 은거하면서도 뜻을 추구하고 의를 행함으로써 도에 이르는 것, 나는 그런 말을 들었으되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



경견 경기를 보면 개들 일정 거리 앞에 먹이가 부착된 바를 설치하고 트랙을 따라 이동시킵니다.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개들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도 그것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지요. '견선어불급'은 선한 일을 하게 될 기회를 갖게 되면 마치 경견과 같은 자세로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그만큼 선의 본질에서 더 멀어질 것처럼 말이지요. 


손에 뜨거운 물이 튀기라도 하면 재빨리 찬물을 찾는 법입니다. 끓는 물에 손을 넣고 찰나라도 버티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선하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면 즉시 그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가능한 일이라고 공자는 인식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직접 보았고, 그런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지요. 적어도 열심히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하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반면, 세상으로부터 쓰임을 얻지 못해 은거하면서도 세상에 펼치고자 하는 뜻을 접지 않고 추구하는 것이나 의로운 일을 해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때를 만나 쓰일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한한 자기 긍정, 절대적인 자기 확신의 심리를 구축하고 실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안분지족해서는 획득 불가능한 삶의 태도이지요. 이 수준에 머물지 않고 날마다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오직 의롭게 처신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도(道)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인도(人道)를 바로 세우는 일이요, 천도(天道)에 가까워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런 얘기는 들었어도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공자는 선(善)과 의(義)의 차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이 사적이라면 의는 공적 차원의 가치입니다. 물론 현대적으로는 공공선의 개념도 있지만 의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의롭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견의불위 무용야 見義不爲 無勇也 - 의를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위정>편 24장). 오직 군자만이 실천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군자지어천하야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 군자에게는 천하에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도 없고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도 없다, 의로움을 따를 뿐이다. <이인> 편 10장).


<선진> 편 19장에서 선한 사람의 길에 대해 묻는 자장에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불천적 역불입어실 不踐迹 亦不入於室 - 성현의 발자취를 밟지 않으면 역시 방에는 들어갈 수 없다." 


* 참고: https://brunch.co.kr/@luckhumanwork/1076


선하게 사는 것과 의롭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선한 사람들이 불의한 자들의 편에 서서 핏대를 세우며 '묻지마 지지'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본 성품이 선할 수는 있어도 불의와 의를 구분하지 못하면 인식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가방끈이 짧은 것은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공부는 가방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의를 판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위장된 선에 현혹될 수밖에 없습니다. 악인들이 언제나 그럴듯한 선의를 내세우는 까닭이지요. 


불의한 세상에서 개인의 선은 악용될 뿐입니다. 불의가 판치면 부정과 부패가 곧 선이 되고 맙니다. 선한 사람들이 발붙일 곳이 없게 되지요. 정의로운 사회로의 복귀가 이 시대의 절대적 과제인 이유입니다. 오늘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꿈꾸며 실력을 기르고 힘을 키우며 바르게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바른 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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