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도로에 고인 빗물을 인도에 뿌리며 차들이 분주히 지나다녔고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로니카가 베이커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로니카는 출입문 밖의 우산함에서 노란 우산을 빼어 펼쳤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빗속을 걸어가던 로니카는 문득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르기나 한 듯 걸음을 멈추고 걸어온 방향 뒤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공원의 바닥으로 내리는 비는 더욱 세차게 느껴졌다. 로니카는 빵이 든 봉지를 품 쪽으로 더 끌어안으며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공원 입구로 들어서 공터를 지나 좌측 오솔길로 접어 들었다.
순간 로니카는 정신 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비닐봉지가 떨어져 바닥에 빵이 나뒹굴었고 금새 비에 젖기 시작했다.
벤치에 등을 기댄 채 정우가 비를 맞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폼이 마치 일부러 비를 맞으며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정우야!”
정우의 머리 위로 우산을 급히 씌워 주며 로니카가 외쳤다.
“정우야! 어머, 이게 웬일이야. 얘, 정우야. 이 비를 여기서 다 맞고 있으면 어떡해?”
로니카가 정우를 흔들며 “정우야! 정우야!”라고 계속 소리쳤다. 정우가 눈을 뜨더니 대답을 하는 대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제서야 로니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정우가 곧 정신을 잃고 힘없이 품에 안겨 오자 당황한 로니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정우를 불러 깨우려 했다. 정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로니카는 급히 정우를 등에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이 정우를 업고 달려온 로니카는 상가 1층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병원 현관에는 병원 내부 공사 관계로 당분간 휴진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로리카는 방향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흠뻑 젖은 몸으로 아이를 업고 있는 로리카를 보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놀라서 옆으로 길을 비켜 주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약을 먹은 정우는 침대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로니카는 정우 옆에 앉아 정우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로니카는 정우의 옆을 벗어나 거실로 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정우의 젖은 옷들을 모아 드럼세탁기에 넣었다. 그리고는 젖은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꺼내는데 가방 안에는 하얀 비닐로 감아 둔 물건 하나가 들어 있었다.
가방을 세탁기에 집어 넣고 난 후 로니카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비닐을 풀어 내용물을 열어 보았다. 휴대폰과 책이 들어 있었다. 휴대폰은 식탁에 두고 책을 집어 드는 로니카의 눈에 『철학하는 삶의 즐거움』이라고 쓰인 책의 표지가 들어왔다.
깜짝 놀란 표정으로 로니카는 정우에게 다가가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책을 펼쳐 보는데 그 안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똑똑하고 새침한 진희 안녕? 덕분에 책 재미있게 잘 봤단다. 고맙다. 그런데 아저씨가 토요일에 일이 있다는 것을 깜박하고 다른 약속을 잡아 버렸지 뭐니. 대신 아저씨 조카인 정우에게 책을 전해 주라고 했단다.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하구나. 대신 내일 12시에 공원에 나와 줄래? 아저씨가 맛있는 것 사줄게. 꼭 나와 주면 좋겠구나.”
편지를 읽은 로니카의 표정이 금새 어두워졌다.
‘뭐 이런 삼촌이 다 있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 어린 조카를 우산도 없이?’
로니카는 안쓰럽다는 듯이 정우의 이마를 여러 번 쓸어 올렸다. 빨래가 되기를 기다리며 소파에서 책을 읽던 로니카는 꾸벅꾸벅 졸다가 쓰러져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