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13. 이불

by 오종호

거리는 한적했다. 로니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세련된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상점들의 영업이 모두 종료된 자정 가까운 밤늦은 시각이었다.


이불 가게 앞을 막 지나치려 하는데 조명이 깜박깜박하며 전기가 누전되는 듯한 지지직 소리가 났다. 로니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불 꺼진 간판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간판과 매장 안이 다시 환하게 밝아지자 갈 길을 가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놀란 눈의 로니카에게 아주머니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축하해요.”

“네?”

“저희 매장에서 특별히 준비한 고객 선물이 있는데 아가씨께서 당첨되셨어요.”

“제가요?”

“신상품 출시 기념으로 이 시간대에 지나가시는 분들께 며칠 동안 깜짝 선물을 드리고 있거든요. 자, 여기 있습니다. 보기 보다 아주 가벼워서 아가씨 혼자 들고 갈 수 있으세요. 저희 제품 좋은 거 다 아시죠? 잘 덮으시고 가게 홍보 좀 부탁드려요.”


로니카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며 아주머니가 말을 덧붙였다.


“아! 걱정 마세요. 공짜니까요. 안녕히 가세요. 저희 매장 자주 들러 주세요.” 


로니카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아주머니는 매장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다소 황당하지만 땡 잡았다고 생각하며 로니카는 이불 가방을 흔들면서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아까처럼 매장 간판이 몇 번 깜빡이며 불꽃이 튀더니 매장 안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삽시간에 어둠 속에 잠겼다.  



아주머니는 이페에게 이불을 떠넘기다시피 손에 들려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페가 떠나자 간판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점멸하다가 꺼지고 매장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이페는 머그잔을 들어 단숨에 커피를 들이켰다. 식탁에 시선을 둔 채 미동도 않고 앉아 있는 진희. 이페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진희, 아니 로니카. 결국 그 아줌마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란 말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이페. 바로 저것 때문이죠.”


침대 위의 이불을 가리키며 진희가 말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당신한테도 그러던가요, 이불이?”

“맞아요, 황당해 하면서도 저 이불을 덮지 않고 자기도 했고, 심지어 버리기도 했는데 일어나 보면 어느새 덮어져 있더라구요.”

“음…… 당신도 그 아줌마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겠군요.”

“그런 아줌마는 근무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매장도 늘9시에 문을 닫구요. 그때가 12시 정도는 됐었죠 아마?”

“맞아요. 나도 그랬죠.” 


이페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우습죠?”

“우리를 봐요. 너무 웃기잖아요. 나와 당신의 지금 모습. 틀림없이 내일이면 나는 정우가 될 거고 당신은 로니카가 되겠죠. 이건 정말 드라마틱한 저주예요. 하하하.”

“딱 하나만 빼구요. 31일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렇군요. 일 년에 절반을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모자라 며칠의 보너스까지 선물해준 거군요. 고맙게도 말예요. 이제 그만 가야겠어요. 오늘 미쳐 버리지 않으려면 하하하.”


이페가 의자에서 일어나 가려고 하자 진희가 이페를 바라보았다.


“정우 옷과 가방은 다 말랐을 거예요, 저기 걸려 있어요. 그리고…… 내일 공원에서 만날래요? 할 일도 없잖아요?”

“……”

“내 음식 맛 기억하죠?”


이페가 말없이 가려 하자 진희가 말을 덧붙이며 웃었다.


“옷은 다른 것으로 갈아 입는 게 좋겠어요.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야겠네요.”


이페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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