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
버스 운행을 쉬는 일요일. 준수는 회사 지정 정비소에 버스를 맡기고 택시 운전을 하는 선배 희철을 만나러 기사 식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추석 대목을 앞둔 휴일의 한낮 시장통에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엉겨 붙어 파도처럼 흘러 다니는 중이었다. 명절이라도 갈 곳이 없는 준수는 돌아가는 길에 간단한 제수 음식과 두 할머니, 그리고 두 할머니의 손주들을 위한 선물을 살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전쟁통에 죽은 둘째 딸을 생각하며 자주 울었다. 젖도 제대로 못 먹이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누이는 피난살이의 혹독한 환경과 굶주림을 버텨 내지 못했다. 가진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에게 목숨이라도 붙어 있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내주었다면 사람이 팽이처럼 맥없이 쓰러지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어머니는 한스러워했다. 도와야 헌다, 혼자만 살려고 하덜 말어라, 같이 살다 보믄 함께 웃을 날이 오는 기 그거이 인생이다. 뜨거웠던 여름날에 시든 화초처럼 자리를 펴고 누웠던 어머니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을 알았는지 준수의 손을 잡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먹는 것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돈도 나눠라. 사람 목숨은 그래야 무거워 지는 벱이다.
괜스레 말랐던 눈물샘에 습기가 모여들자 준수는 고개를 털어 기억을 날려 버리곤 이전의 생각을 이어갔다. 진호댁에게는 뭘 선물하지? 연희의 얼굴이 떠오르자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든 준수는 기사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준수야, 여기여.”
기사들과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점심 시간을 만난 식당에 가득했다.
“형, 아직 시간 전인데 언제 왔슈?”
“손님 내려주고 시간 다 되아서 왔지. 곰방 전에 왔어. 백반 두 개 시켰다. 오늘은 니 좋아하는 제육볶음이네.”
“언제 술 한 잔 해야 혀는데 둘 다 운전대 잡고 있으니 맨날 밥이나 먹네 그려.”
“너 쉬는 날 나도 함 맞춰서 쉬어 볼라니께 그때 한 잔 허자구. 형이 니네 집으로 찾아갈꾸마.”
“그려요, 알았슈.”
넉넉한 인심이 살아있던 시절의 시골인 지라 푸짐한 양의 제육볶음과 시레기국, 고봉밥과 밑반찬이 차려졌다. 이런 저런 가벼운 화제들을 곁들여 그릇들을 깨끗하게 비우고 숭늉까지 한 사발 들이킨 희철이 정색하고 물었다.
“너 그 소식 들었냐?”
“뭔 소식?”
“얼마 전에 택시 기사 하나 죽은 거.”
“그런 일이 있었슈? 나야 맨날 버스 운전하고 다니니께 세상 일에는 좀 어두워서.”
“칼로 목을 땄다는구먼. 분위기가 좀 흉흉혀.”
“이유가 뭐래유?”
“그게. 일당 번 거 다 가져갔다구 허더라.”
“썩을 놈의 자슥이구만. 돈 몇 푼에 사람을 죽여?”
“죽은 그 사람 성실하고 순혔어. 처자식 끔찍허게 생각혀서 일허구 집 밖에 모르던 친구였지. 어떤 후레자슥인지 몰러도 천벌을 받을 것이구만.”
“여그 짭새덜이 잡을 수나 있을까 몰러유.”
“뭔 소리여?”
“읍네 파출소 경사로 있는 철민이 갸 학교 다닐 때 쌩 양아치였슈. 맨날 애들 줘 패고 돈 뺐고. 그런 놈이 뭔 민중의 지팡이겄슈?”
“그래도 살인 사건인데 군경찰서에서 내려오지 않겄어?”
“아마도 그러겄쥬. 하여간 지는 짭새라믄 아주 질색유. 하여튼 간에 혹시 택시 기사들만 노리는 그런 놈일 수도 있으니 형도 조심혀유. 으슥헌디 가자는 낯선 사람 태울 때는 교대 시간이라 못 간다 허고. 그런 일 있으믄 돈 보다 안전이유. 형수허고 애덜 먼저 항시 생각혀유.”
“그려 그려 알았다이. 너도 조심허고 명절도 잘 보내그라. 이건 별건 아니고 형수가 너 갖다 주라고 좀 싸줬다.”
희철이 옆 의자에 놓여 있던 비닐 봉지를 건넸다.
“어이구 형수는 뭘 이런 걸 다?”
“겉절이 좀 담근 겨. 귀찮여도 아침은 챙겨 묵고 다녀라. 혼자 살믄 항상 먹는 게 일이여.”
“고마워유 형. 형수님헌티 잘 먹겄다구 전해 주셔유.”
택시를 몰고 떠나는 희철을 배웅한 뒤 준수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미연이와 홍식이 선물로 용돈을 넣을 편지 봉투와 두툼한 공책 몇 권을 샀고, 두 할머니에게 드릴 화려한 스카프를 사면서 연희 것도 챙겼다. 안 사기도 그렇고 특별한 걸 마련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가장 무난한 선택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니, 수리비 얼만 지는 말씀하시고 고치셨어야죠. 십만 원이 뭔 애 이름도 아니고. 하여튼 전 못 드려요. 깎아 주세요.”
준수가 정비소 마당을 지나 걸어가는 도중에 말쑥하게 차려 입은 사람이 서울 말씨를 쓰며 정비 직원 김씨에게 따지고 들었다. 입이 댓 발 나온 김씨가 묵묵히 듣고 있다가 콧바람을 킁 내뱉더니 한 마디 툭 던졌다.
“워치키 허까유? 원래대로 물러 드려유?”
타지에 출장 왔다가 차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었다. 똥 씹은 얼굴로 뭐라 답할 거리를 찾지 못해 씩씩거리던 남자는 체념했는지 바닥에 소리 내어 침을 탁 뱉더니 결제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준수가 김씨에게 인사하자 김씨가 씨익 웃어 주었다. 그는 오랫동안 기름밥을 먹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전산면에서 차에 관해 그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는 평가를 받는 그였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차가 있다고 유세를 떨 줄만 알았지 정직하게 수리하는 그를 칭찬하는 데는 인색했다.
“오셨슈? 뻐스 정비 다 되었슈. 엔진 오일 갈았구유. 담 번엔 브레끼 패드 교체해야겄슈. 여그 싸인 좀 부탁혀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정비소 사무실 직원 이씨가 문을 꽝 닫고 나가는 좀 전의 남자에게 던졌던 시선을 회수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준수가 서명을 막 마치자 검은색 양복을 입은 새로운 남자 하나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로 오셨어유?”
커피를 홀짝이던 여직원이 남자를 향해 묻자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여직원에게 다가가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 주며 말했다.
“저 혹시 이 사람 보신 적 있습니까?”
“아뉴. 처음 보는 데유?”
남자가 대꾸없이 이번에는 준수 쪽으로 다가와 사진을 내밀었다. 표정의 변화없이 사진을 내미는 남자에게서 왠지 한기가 풍겼다.
“혹시 이 사람 보신 적 있습니까?”
“글씨유. 첨 보는 얼굴이네유.”
이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라는 말이 사실임을 강조했다.
사진 속 남자는 지난 달 도로에 쓰러져 있던 그 사람이 분명했다. 그럼 그렇지. 큰 일 치고 도망 다니는 사람인 것 같드라니. 이렇게 생각하면서 준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는 없지. 암.
“모르는 사람유. 근디 뭐하는 사람이래유?”
준수는 능청스럽게 잡아떼며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실례했습니다.”
고개를 홱 돌려 밖으로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준수는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남자가 이 잡듯이 묻고 다니면 언젠가는 보건소나 면사무소에 들를 수도 있었고, 그와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그가 청학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할 수도 있었다. 에이, 뭔 일이야 있겄어? 준수는 이씨가 건넨 박카스 한 병을 시원하게 비우고는 버스를 몰고 청학리로 향했다.
“국과수 보고서 왔다고?”
전산군 경찰서 강력계 반장 김형식이 회의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뭐래?”
“프로의 솜씨는 아니랍니더. 사용한 흉기는 미제 군용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허구요.”
“고통이 컸을 거라구 합니다.”
“돈을 노린 우발적 범행이다?”
“그렇게 보입니더.”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얹었다.
“이번 명절 좀 편하게 보내나 혔다, 니미럴 거. 푼돈에 사람 죽인 새끼다.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겄제. 사건이 발생한 전산면을 중심으로 혀서 군내 양아치들부터 불량 학생들까지 샅샅허게 탐문혀. 군부대들헌티 협조 공문 보내서 검문소마다 수상한 사람 검문검색 꼭 혀달라 하고. 괜히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믄 서장님 위신 깎이구 우리도 고생길 훤히 열리는 거여. 속전속결, 으이? 뺑이 좀 치자.”
남자 형사 셋이 저마다 알겠다고 대답하며 회의실을 빠져 나갔다. 전산면에서 처음 일어난 강력 범죄였다. 전산면은 평화로운 고장이었다. 김형식은 왠지 외지인의 소행일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럴 경우 사건은 미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그의 예감처럼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오랜 세월 동안 미제로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