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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22. 2024

시간 시장(Time Market)-21

작별

AI는 여의도 디그니바이까지 1시간 50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석우를 뒤따라오는 경호원들에게 맡기고 시우가 운전대를 잡았다. 조수석에 앉은 철훈이 뒤따라오는 경호원들을 지휘했다.

“초조해할 것 없어. 이석주는 우리가 제 시간에 도착하기를 원할 테니 방해하지는 않을 거야. 이석우 보다 훨씬 영악한 자니까.”

“두 놈이 짜고 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까 이석주의 말을 들었을 때 이석우의 표정은 연기로 나올 수 없는 것이었어.”

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자 정확히 10분이 남아 있었다. 시계의 숫자는 인간이 아무리 머리를 굴리면서 노력해 봐야 AI의 손바닥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5분 전, 엘리베이터는 195층에서 문을 열었다. 무장한 자들이 총을 겨누며 시우와 철훈의 몸을 수색했다. 

등을 떠밀리며 전송실에 도착하자 영철이 권총을 들고 바이 머신 옆에 서서 낄낄대고 있었다.

“어? 이모부가 왜?”

“등신 새꺄? 내가 아직도 니 이모부로 보이냐?”

석주가 총구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생각을 좀 해보라는 시늉을 했다.

“야, 그건 그렇고 이석우 어딨어?”

“여자를 풀어 주면 넘겨 주겠다.”

시우가 지원에게 안심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와, 나, 이 씨발! 이 년 바이 시키기 전에 당장 데려와!”

석주가 총구를 지원의 머리에 겨누며 악을 썼다. 테이프로 입이 봉해진 지원은 눈을 감고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니가 바이했다는 것은 알았었다. 그런데 자발적이었던 게 아닌 모양이군? 언제부터 차영철로 살았던 거지? 아니, 원래의 차영철이 너 였던 건가?”

시우가 영철의 얼굴을 한 석주를 노려보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하, 대화를 좀 하고 싶으시다? 그래, 다들 헤어지는 마당에 이빨이나 좀 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야, 니들은 뭐하고 있어? 한 놈만 남고 당장 가서 이석우 데려와. 빨리 꺼져!”

검은 양복을 입은 무장한 자들이 우르르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전송실 입구에서 한 사람만 남아 시우와 철훈의 뒤에 총구를 겨냥하고 있었다. 석주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내가 말야. 이석우 이 새끼하고 술을 진탕 마셨거든? 와, 근데 눈을 뜨니까 내가 바이 머신에 누워 있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이석우 이 새끼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야, 석주야. 그냥 우리가 해결하자. 그런데 형이 갈 순 없잖아. 회사 지켜야지. 원래 왕의 동생도 그냥 신하인 거야. 알지? 니 희생 잊지 않으마. 무조건 자료 확보해서 보내고 오시우, 김철훈 둘 다 죽여. 너 늙어 뒈지기 전에 처리해야 할 거야. 못하면 형 진짜 실망할 거다. 자, 이 사진들 손에 꼭 쥐고 잘 챙겨. 그리고 이 약도 필요할 거야. 몇 개 없으니까 아껴서 먹고. 다 먹기 전에 일 잘 끝내라. 그 동안 즐거웠다.” 하하, 씨발. 내가 살다 살다 쌍둥이 친형한테 배신 당할 줄이야. 진짜 기분 좆같더라구. 차라리 오시우 니가 바이하기 직전으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 된다는 거야. 니 신약 연구 자료를 날리게 된다면서. 그 좆같은 얘기를 들으니까 싹 다 죽여 버리고 싶어지더라구.” 

탕! 석주가 총을 들어 경호원의 머리를 쐈다. 박살난 경호원의 머리에서 나온 뇌수가 유리문에 흩뿌려졌다.

“지금처럼 말이야.”

“미친 새끼.”

“아아, 아직 아냐. 넌 좀 이따가 얘기해. 내가 따로 시간을 좀 줄 테니까. 기분 좋아지면 말야.”

석주가 총구를 겨누며 시우를 제지했다. 

“좆나게 막막하더라구. 니들은 씨발 계획이라도 있었잖아? 돈은 없지,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겠지, 뭐, 그래도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알잖아, 인간들 수준 낮은 거. 아 사실 사람을 몇 번 죽이긴 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었어. 나도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이게 젤 재밌는 건데. 내가 바이된 지 한 달 정도 됐을 거야. 오시우 니 바이 정보를 기억하며 충청도를 훑고 있었지. 어떤 트럭 운전수가 너를 전산군에서 본 것 같다는 거야. 그래서 택시를 탔는데 씨발 기사 이름이 이석우더라구! 낄낄낄낄. 근데 이 개새끼가 어찌나 말이 많던지. 진짜 돌아버리겠더라구. 뭐, 기분은 좋지 않았어. 칼은 나한테 안 맞더라구. 이 총이 깔끔하고 확실히 땡기는 맛이 있어.

오시우 니 흔적은 머지 않아 찾을 수 있었어. 근데 널 죽이면 늙어 뒈질 때까지 이석우만 좋잖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지. 니가 뭘 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정말 흥미진진하더라구. 중간에 니가 숨어서 좆나게 힘들긴 했는데. 하여튼 니들 것을 한꺼번에 다 빼앗는 걸로 내 목표를 바꿨지. 그랬더니 니가 어떻게 움직일지 떠오르더라구. 미국에서 단서를 찾았지. 그거 알아? 니가 아무리 애써도 세상이 안 바뀌는 이유? 내가 변수를 만들었거든. 니 기억 속에 없던 회사들 그거 다 내가 만든 거야. 크크크. 우리 조카님이 또 어찌나 이모부를 잘 챙겨 주는지 아주 눈물나게 고맙더라구. 이제 니들과 작별하기 전에 니들 싸인만 받으면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구만. 덕분에 스펙터클했다. 야, 김철훈이 가방 이리 갖고 와. 여기 위에 올려놔.”

철훈이 석주의 옆에 있는 탁자 위에 오두막에서 챙겨 온 서류 가방을 올려 두었다. 석주가 만족한 표정으로 철훈을 보았다가 탁자 위의 리모컨을 들어 대형 모니터 화면을 켰다. 화면 속에는 철훈의 아내와 어린 아들딸의 모습이 보였다. 철훈의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철훈의 식구들은 아무 가구도 없는 하얀색 방에서 서로 보듬은 채 잠들어 있었다. 

“참고로 생방이야. 인생은 라이브잖아?”

“이석주! 내가 가진 것을 다 줄 테니 제발 가족은 풀어 다오. 나를 죽이려면 죽여. 우리끼리의 문제잖아. 식구들은 제발 놔줘!”

“야! 나 신파 졸라 싫어해. 사람이 살만큼 살면 죽는 거고 그렇지. 다 운명 아니겠냐? 너라는 남편과 아빠를 만난 운명. 다 자기들 복인 걸 나보고 어쩌라고?”

석주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꼰 다리를 까딱거렸다. 

“이 자식!”

시우가 덮칠 듯이 몸을 앞으로 움직이자 석주가 바이 머신의 스타트 버튼에 손가락을 얹었다. 버튼이 눌려도 지원은 남을 것이었지만 또 하나의 지원은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었다. 그 지원의 고통을 시우는 용납할 수 없었다. 석주는 여유로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약한 새끼. 자, 이제 지치는데 본론으로 슬슬 넘어가 볼까? 김철훈 요 귀여운 녀석 덕분에 너희들이 뭘 하는지 잘 알 수 있었어. 물론 너는 이모부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라고 변명하겠지만 사람 잘 보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니까. 철훈이 조카 고맙다. 자, 거기 떨어져 있는 총 주워. 얼른 얼른. 기회 줄 때. 그렇지 그렇지. 이제 그걸로 오시우의 대갈통을 날려라. 그럼 너와 니 가족은 살려 줄게. 굳이 뭐 조연들까지 죽을 필요는 없잖아?”

철훈이 두 손으로 권총을 지지하고 석주의 머리를 겨냥했다. 석주가 권총을 든 손으로 바이 머신의 버튼을 누르려는 시늉을 했다. 철훈이 비통한 표정으로 왼손을 풀고 권총을 든 오른손을 시우의 머리로 향했다. 지원이 신음하며 안 된다고 상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시우는 차분한 표정으로 지원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철훈이 권총을 내린 다음 멀리 집어 던졌다. 

“김철훈 이 병신. 무덤을 파는 구만.”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의 무리들이 전송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여, 마침 때 맞춰 오는구만.”

여전히 뒤로 손이 묶인 석우가 경호원들의 손에 떠밀리며 전송실로 비틀비틀 들어왔다. 석우의 얼굴은 30년은 늙어 있었고, 머리도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석우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뭐야? 저 새끼 왜 이렇게 늙었어? 니들 저 새끼한테 무슨 짓 한 거야?”

“우리가 뭐 한 거 없는데? 아하, 내가 보낸 샘플 먹은 모양이네? 그러길래 유통기한 지난 건 조심해서 먹어야지. 아, 마음 아프냐? 그럼 너도 조금 있다가 하나 줄게.”

철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시우, 이 개새꺄! 이 여자 바이하기 전에 당장 제대로 된 약 가져와서 저 새끼 먹여. 당장!”

시우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상의 안주머니를 가리켰다.

“야, 당장 옷 벗어. 야, 이 새끼들아 뭐해? 저 놈 옷 벗겨서 약 가져와!”

경호원 중의 하나가 시우의 수트 상의를 벗긴 다음 약통을 꺼내 석주 옆의 탁자 위에 올려 두고 물러났다. 석주가 약통을 집었을 때였다.

“야, 이석주 이 병신 새꺄!”

석우가 고개를 쳐들어 석주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건 어떻게 믿을 건대? 응? 그러니까 내가 시킨 대로 했어야지, 이 병신아. 차영철로 둔갑이라니. 이 똘빡 새끼, 뭔 짓을 한 거야?”

“닥쳐, 쓰레기 배신자 새꺄! 아악!”

석주가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석우를 향해 권총을 겨냥했을 때였다. 탕 탕 탕 탕 탕! 석주의 권총을 빼앗은 지원이 순식간에 경호원들을 모두 제압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총알을 맞고 삶을 마감했다. 팔이 부러진 석주가 쓰러져 고통에 신음했다. 

“이 썅년이 어떻게?”

“고마워, 아미카. 수고 많았어.”

“별 말씀을요, 도미누스.”

본래의 얼굴로 돌아온 아미카가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꾸벅 인사했다. 


지원과 미국인 경호원들, 그리고 철훈의 경호원들 몇이 도착했다. 경호원들은 시체와 무기들을 수습했다. 

“이제 1막이 끝난 건가요?”

미소를 띤 지원이 시우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하나만 더 마무리하면요.”

시우가 지원의 손을 잡으며 미소지었다. 


석우와 석주는 각각 바이 머신에 묶인 채 눕혀졌다. 입에 테이프가 붙은 석주는 신음하며 몸부림쳤지만 맨 얼굴의 석우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다시 젊어질 테니 건강하게 오래 살라구, 이석우. 이석주 너도 잘 살아라. 대화는 여기 남는 너희들하고 마저 하마.”

시우와 철훈이 동시에 두 개의 서로 다른 버튼을 눌렀다. 바이 머신이 작동하며 빛이 석우와 석주의 몸을 휘감았다. 기계가 작동을 멈추자 석우가 석주가 의식을 잃고 잠들어 있었다. 시우와 철훈 두 친구는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철훈의 가족이 구출되는 장면을 지원이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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