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Oct 21. 2024

시간 시장(Time Market)-20

재회

“야, 경치 죽이네.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더 대단해. 내 별장으로 딱이겠어.”

호수가 눈에 들어오자 석우가 소리쳤다. 풍경에 감탄하며 주소지에 이르자 두꺼운 강철로 된 육중한 정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운전기사 분은 하차해 주시고 이석우 사장님이 직접 운전해서 진입하시기 바랍니다.”

철문 위에서 빛이 쏟아지며 석우가 탄 차를 스캔하더니 명령조의 남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 자식들 까칠하네. 승준이 여기서 좀 쉬고 있어라. 아니다. 팀원들하고 합류해.”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괜찮아 괜찮아. 뭐 죽이기야 하겠냐? 그리고 네가 상황 다 파악하고 있을 거잖아?”

“예, 사장님.”

석우가 운전석에 앉아 차문을 닫자 정문이 열렸다. 차는 정문을 통과해 호숫가를 따라 나 있는 2차선 도로를 달렸다. 정문에서 1분쯤 달리자 주차장이 보였다. 주차하고 목조 계단을 올라가자 두 채의 통나무집과 잔디가 깔린 넓은 공터, 그리고 뒤쪽의 숲이 보였다. 

“야, 좋은데. 머리 식히며 낚시하기 딱이겠어.”

석우가 감탄하며 말했다. 

“아니지 아냐. 쓸데없이 낚시를 왜 하냐? 여자 낚는 거면 몰라도. 다들 안 그래?”

귀에서 여러 사람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야, 다들 집중 안 할래? 하는 승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때 거리가 가까운 왼쪽 오두막의 현관문이 열리는 모습이 석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쪽으로 오라는 얘기겠지?”

어두컴컴한 실내로 들어서자 바닥에 설치된 화살표 모양의 노란색 조명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석우의 등 뒤에서 현관문이 저절로 닫혔다. 힐끗 뒤를 돌아보고 나서 석우는 드문드문 켜져 있는 화살표를 따라 안으로 이동했다. 화살표는 지하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햐, 이거 뭐야. 영화 찍나? 세트 좋네. 다들 보이냐?”

“예, 사장님. 잘 보입니다.”

승준이 즉각 대답했다. 지하로 내려가자 군데군데 주황색 간접 조명이 켜져 있는 널찍한 거실이 나타났고, 문이 열린 방 하나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석우는 자연스럽게 그 방을 향해 나아갔다. 

방의 중앙에 위치한 빨간색 천으로 덮인 사람 허리 높이의 테이블 위에 유리로 된 관이 놓여있었다. 석우의 눈에 오시우의 것으로 보이는 시신이 들어왔다. 보존 상태가 좋아 보였다. 파란색 정장을 입은 오시우의 시신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생기가 돌았다. 시신의 배 위에 가지런히 모인 두 손에서 손톱이 하나 빠져 있었다. 구두가 신겨져 있어서 발톱은 확인할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뒤를 돌아보자 언제 왔는지 철훈이 서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아이, 깜짝야. 하, 씨, 거 노크 좀 하지. 김 팀장, 오랜만이네? 뭐야, 근데 왜 하나도 안 늙었어?”

철훈에게 다가가며 석우가 말했다. 

“오시우가 남긴 이 자료로 약을 만들어 먹었더니 전혀 안 늙지 뭡니까? 돈이 좋긴 좋더라구요. 돈 있는 청춘한테는 시대와 무관하게 즐거운 일이 사방에 널려 있습디다.”

“김 팀장이 직접 약을 다 만들었어? 와, 씨발 대박이네, 첨단 장비 뭐 그딴 것도 필요 없었던 거야?”

“오시우가 천재지 않습니까? 대체 장비들로 기가 막히게 설비를 구축했더라구요.”

“브라보 브라보. 그래 그 친구가 대단하긴 하지. 내 인정해. 불세출의 천재야. 암.”

석우가 박수를 치며 깝죽댔다. 

“약 어딨어?”

석우가 정색하고 도끼눈을 뜨면서 재촉했다. 철훈이 태연하게 서류 가방을 열자 푸른색 알약들이 담긴 약통들이 가득했다. 그 중 하나를 꺼내 쥔 석우는 눈높이로 들어올려 이리저리 살피더니 가방에 휙 던져 넣었다.

“지난 번 샘플하고 동일한 건가? 6개월마다 복용하는?”

“맞습니다. 이미 효능을 체감하셨겠지요?”

“그래 맞아. 저절로 활력이 솟는 게 아주 좋더라구.”

“1년치 10억. 좋지 않습니까?”

“아, 좋지. 좋아. 그런데 오시우는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군?”

“살아 있으니까요.”

“뭐?”

탕 탕 탕. 악, 으악, 억. 석우의 귀에서 한 바탕 총소리와 비명 소리가 줄지어 이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 귀에서 심한 잡음이 들리자 석우가 귀 뒤에 붙은 작은 검은 점 모양의 송수신기를 떼어 버렸다.

“병신들.”

“이석우 사장님, 협조 좀 해주셔야 겠습니다.”

어느새 일어나 등 뒤로 다가온 시우가 석우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댔다. 

“하 씨발. 개나 소나 다 총이네. 하, 요즘은 다들 왜 이렇게 창의력이 떨어지지? 어떻게 예상을 안 벗어나냐? 철훈아, 나 잘못되면 니 가족 좆될 텐데?”

석우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철훈을 노려보았다.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어차피 죽일 셈 아니었나?”

철훈이 담담하게 받아 넘겼다.

“김 팀장, 오래 살더니 많이 컸네. 보기 좋아. 후후.”

석우가 말을 마치자 마자 목에 주사 바늘이 꽂혔다. 석우는 뒤를 돌아다보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무거운 철제 의자에 앉아 두 손이 등 뒤로 결박된 상태로 석우는 정신을 차렸다. 

“하, 새끼들. 뭘 또 이리 귀찮게.”

“이석주는 어디 있지?”

시우가 석우 가까이 얼굴을 들이댔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중간에서 강렬하게 부딪혔다. 그때 석우의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철훈이 스마트폰을 꺼내자 발신인이 석주인 화상 통화였다.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훈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스피커 모드로 전환했다. 화면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지원의 얼굴을 비추며 멈추었다. 시우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폰을 들고 있는 철훈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여, 친구들. 반가워. 다들 모였나?”

석주의 목소리였다. 석주는 화면 밖에서 떠들었다.

“누군지 알아보겠지? 안젤라 최, 아니 유채린, 아니지 아냐. 최지원인가?”

“이석주 너 이 새끼!”

시우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크크큭. 석주, 돌아왔네. 큭큭큭.”

석우가 혼잣말하며 상체가 흔들릴 정도로 킥킥거렸다.

“형, 꼬라지 좋네? 나 없이 혼자 뭘 해보겠다고 대가리 굴리더니. 자자, 잘들 들으세요, 동네 사람들. 다 함께 모여서 이 좆같은 게임을 끝내자고. 내가 딱 두 시간 줄게. 여기 어딘지 알지?”

석주가 화면을 움직여 주위를 좌우로 보여 주었다. 디그니바이 건물 195층에 있는 바이룸 곧 전송실이었다. 지원은 기계 안에 묶인 채 눕혀져 있었다. “고속도로 좀 막힐 거예요. 시간 안에 오려면 마구 밟아야 할 걸? 시간 잽니다. 제 시간에 도착 안하면 우리 나이 많은 할머니 먼 곳으로 보내요. 나도 궁금해. 내가 뭘 누를지 말이야. 나 요즘 지인짜 인내심이 많이 없어졌거든? 그럼 수고. 운전 조심 하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