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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22. 2024

시간 시장(Time Market)-22(final)

에필로그

에필로그 1


“이 씨발, 여기 어디야?”

결박되었던 끈을 풀고 일어선 석우의 눈앞에 족히 수십 미터 높이는 되어 보이는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옆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정글이 펼쳐져 있었다. 목이 말랐던 석우는 얼굴을 처박고 물을 마셨다. 물은 맑고 시원했다. 

“읍읍읍.”

뒤를 돌아보니 축축한 이끼가 잔뜩 돋아나 있는 나무 아래에서 석주가 낑낑대고 있었다.

“저, 새끼. 야 이 멍청한 새꺄! 너 때문에 이게 무슨 엿같은 상황이냐?”

“읍읍 읍읍읍.”

“하아. 저 병신. 니가 알아서 풀어 이 존만아. 이게 다 너 때문이니까. 알아 들어?”

“읍읍읍 읍읍 읍읍읍 읍읍”

석주가 옆으로 누운 채 두 발로 땅을 밀며 뒤로 정신없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석우의 눈앞으로 짙은 그림자 하나가 생겨나고 있었다.

“뭐야 이거?”

고개 돌린 석우의 눈앞에 두 뒷발로 버티고 선 거대한 괴수가 있었다. 하, 씨발.

원시 악어가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석우의 머리부터 허리까지 단숨에 물어 버렸다. 끈이 풀린 석주는 죽을 힘을 다해 반대쪽 숲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니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키키킥. 키키킥. 악어에 물린 석우의 바지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병신 쌤통이다. 크크큭. 

숲을 벗어나자 드넓은 벌판이 나타났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석주는 물에서 조금만 더 멀어져서 쉬기로 했다. 크헉. 갑자기 옆구리에 날카로운 고통이 밀려왔다. 땅이 눈에서 자꾸만 멀어졌다.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힘겹게 젖혀 위를 쳐다보았다. 집채만한 익룡이 자신을 낚아채 날고 있었다. 바람 때문인지 옆구리의 상처 때문인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익룡이 절벽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절벽 위의 둥지에서 새끼 몇 마리가 좋다고 홰를 치고 있는 모습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 좆됐네.   



에필로그 2


청학리 마을회관 잔디밭에서 두 동갑내기 친구의 140세 생일 잔치가 한창이었다. 하얀색 대형 천막들이 무리를 이룬 학 날개처럼 가을 바람에 너울거렸다. 

김씨로부터 과수원을 사들인 지원은 청학리 주민들에게 매달 식자재와 생활비를 제공했고, 길을 닦아 주었으며, 주기적으로 집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 주었다. 더는 농사 지을 필요가 없어진 논과 밭에 도서관이며 마을회관과 공동 식당, 그리고 운동장과 체육관이 들어섰다. 청학리에 식구들과 함께 정착한 지원의 직원들이 모든 일을 도맡아 진행했다. 파란색 학 동상이 설치된 예쁜 공원 안에 연못이 들어섰고, 그 위에 여름이면 산바람이 더위를 식혀 주는 멋들어진 2층짜리 정자가 지어졌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동네라고 소문난 덕에 많은 외지인들의 방문과 언론사의 취재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노화가 멈춘 장수 마을에 들어와 살고 싶어 했지만 그들을 위한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주민들의 사생활이 방해 받자 군청에서는 청학리 방문을 주말로 한정했다. 마을 주민들은 평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었다. 

얼마 전에 100세가 넘은 준수와 이제는 준수댁이 된 연희와 그의 자식들이 두 할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다. 준수와 연희의 얼굴은 40대 중반에 멈춰 있었다. 영순과 희숙, 현미 등이 다음 줄에 서 있었다. 이들은 연희와 함께 청학리에서 나는 천연 재료들을 이용해 전통 옷감을 만들어 해외 시장에 수출하고 있었다. 모든 수입은 청학리의 이름으로 전산시 내 보육시설들에 기부되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방문한 외지인들이 가을볕을 피해 천막 안에 앉아서 마을에서 무한대로 제공하는 술과 음식을 즐기며 이 신비로운 마을에서 벌어지는 잔치의 흥을 만끽하고 있었다. 석구와 석구의 식구들도 한 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석구의 어머니가 잘 익은 따뜻한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 괜찮다고 사양하는 며느리의 입에 기어이 넣어 주었다. 석구와 자식들이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잔치는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오늘의 두 주인공 할머니는 노을빛을 받으며 정자 2층에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 다시 한 번 뒤돌아 손을 흔드는 시우와 지원에게 두 할머니도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시우가 차에 올랐다. 여러 대의 차들이 줄지어 너른 주차장을 빠져 나가 잘 닦인 2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저 사람이 청학이었네. 저 사람이 청학이었어.”

미연이네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홍식이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연이네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미연이네 할머니가 웃으며 머리를 기울였다. 두 친구가 옆 머리를 맞대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가을 노을의 긴 그림자가 마을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에필로그 3


‘띵동. 환영합니다. 이석주 님이 로그인하셨습니다. 이석주 님이 형제 분인 이석우 님의 시간을 전환한 타임머니는 2042년 8월 29일 오후 15시 30분 장마감 시각 현재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두 분 모두 존엄사 대상이 되셨습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죽음 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으으응 으으으 으응으으.”

허공에 떠 있던 화면이 꺼지자 침대에 묶인 채 입에 양말이 물린 석우가 부들부들 떨며 신음했다. 둘의 외모는 80대 노인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조용히 해 개새꺄!”

감옥의 천장에서 두 개의 가느다란 금속관이 내려오더니 석우와 석주를 향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공포에 사로잡힌 석주가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철창을 붙잡고 밖에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날카로운 침이 머리를 찔렀다. 석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던 석주의 숨이 이내 끊어졌다. 석우도 눈깔을 뒤집은 채 침대에 널브러졌다. 

3분 후 죽었던 석우와 석주의 숨이 돌아왔다. 둘의 눈에 다시 화면이 나타났다.

“오늘의 결과도 아쉽게 되었네요! 하지만 우리에겐 내일의 희망이 있으니까 다시 힘을 내도록 해요. 내일은 금요일, 이번 주의 마지막 매매일입니다. 내일은 꼭 하루 100% 수익률을 달성하여 형기를 1년 줄이도록 해봐요, 우리! 그럼 저녁 식사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안녕.”

대법원에서 500년 징역형을 받은 두 형제에게 시우는 특별 제안이 적혀 있는 정부 승인 문서를 건넸다. 두 사림 중 누구라도 모의 시간 시장에서 하루 100% 수익을 달성하면 형기를 1년씩 줄여 주겠다는 것이었다. 단 한 번의 패배 후 석우는 그냥 늙어 죽기를 택했지만 석주는 달랐다. 석주는 시간을 거슬러 갔다 온 여행자답게 포기를 몰랐다. 그랬던 그도 6개월만에 처음으로 하루 30% 수익률을 올린 오늘, 차라리 때려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실낱 같은 희망 때문이 아니었다. 배신자의 고통이 멈추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숨만 쉬는 고통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권태와 고통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틀렸다. 권태가 최고의 고통이었다. 

“큭큭큭큭큭. 크하하하하.”

석주가 갑자기 배꼽을 잡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똥과 오줌을 쏟아낸 석우가 방귀를 뀌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심하게 웃었는지 그의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새어 나왔다.

석주의 귀에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무엇인가 폭발하는 소리, 총소리, 비명 소리, 분주한 발자국 소리들이 뒤섞여 다가오고 있었다. 철컥. 철창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와 석우를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안개처럼 희뿌연 석주의 시야 속에서 서늘한 느낌의 금속이 불쑥 석주의 코 앞에 나타났다. 탕. 권총은 지체없이 불을 뿜고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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