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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14. 2022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19>-예충禮忠


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정공문 군사신 신사군 여지하 공자대왈 군자신이예 신사군이충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어떠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임금은 예로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충으로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정공은 <위정>편 19장에 등장했던 노나라의 마지막 왕 애공의 선왕입니다. 오십 줄에 들어선 공자는 정공에게 등용되어 요즘 우리나라의 관직으로 치면 지방 시장(중도재中都宰, 재임 기간 1년), 국토교통부 장관(사공司空, 재임기간 1년 미만)을 거쳐 법무부 차관(소사구小司寇, 재임기간 3년), 법무부 장관(대사구大司寇, 재임기간 1년) 직을 수행합니다. 총 6년 정도 기간의 벼슬 생활이었지요. 이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14년 간의 '지적知的 노마드(intellectual nomad)'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삼환이 장악한 노나라의 일개 관료로서는 현실 정치의 높은 장벽을 절절히 느꼈겠지요.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의 리더는 사회 각 분야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에 대에서도 전문가에 버금가는 해박한 지식을 쌓아야 하고 그에 기반한 종합적 사고력과 통찰력을 보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덕치의 리더십을 가능하게 하는 인격적 소양과 철학을 내면에 갖추고 있어야 하지요. 그래야 각각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는 참모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며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이를 수 있습니다. 


공자가 말한 임금의 예禮란 곧 민주적 리더십(democratic leadership)입니다. 절대 권력으로 자신의 의사를 강압적으로 관철시키는 것은 독재자들이 선호하는 방식이지요. 그렇게 해서는 참모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없습니다. 그저 독재자에게 아부하며 보신에 연연할 뿐입니다. 공자가 말한 신하의 충忠이란 곧 공익적 팔로워십(public followership)입니다. 오직 나라와 국민의 입장에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지요. 리더의 판단과 지시가 그것과 어긋난다면 가운데(中) 마음(心)의 진심을 다해 직언을 불사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더의 그릇이 작아 옷을 벗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고 해도 그런 용퇴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며, 그런 훈장은 별빛처럼 국민의 가슴에 새겨지는 법입니다. 


이 땅의 수구 기득권 세력은 정권만 잡으면 국민을 괴롭히고 국격을 훼손했으며 온갖 파렴치한 술수를 동원하여 정적을 제거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민주주의의 파괴자였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할 생각은 없고 그저 권력을 강화하고 강화된 권력을 이용하여 의로운 이들을 겁박하면서 제 잇속 차리는데 급급했을 따름입니다. 발휘할 실력이란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들에게 예와 충이 있을까요? 그럴리가요. 힘과 돈을 매개로 모인 구성원들은 힘과 돈의 고리가 약해지는 순간 모조리 떨어져 나가고 그 조직은 붕괴됩니다. 그래도 동네 양아치 수준의 천박한 의義 정도는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동네 양아치들의 의리라는 게 동네 사람들의 불편함에는 아랑곳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힘자랑이나 하는 수준이니까요.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양아치들에게 살기 좋은 동네 만들어 달라며 이장, 통장, 반장 따위의 자리를 넘겨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양아치들이 득실거리는 노나라의 조정에서 공자도 참 갑갑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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