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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19. 2022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20>-관저關雎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관저 낙이불음 애이불상 


-공자가 말했다.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는 않고 슬프면서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관저'는 『시경』의 첫 편인 <국풍國風>에서도 맨 앞에 배치되어 있는 주남(周南, 주나라 남쪽) 지역의 민요들 가운데 첫머리에 소개되어 있으니 사실상 시경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조숙녀'나 '오매', '전전반측', '금슬'과 같은 유명한 표현들이 등장하지요.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관관저구 재하지주 요조숙녀 군자호구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참치행채 좌우유지 요조숙녀 오매구지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구지부득 오매사복 유재유재 전전반측

參差荇菜 左右采之 窈窕淑女 琴瑟友之 

참치행채 좌우채지 요조숙녀 금슬우지

參差荇菜 左右芼之 窈窕淑女 鍾鼓樂之

참치행채 좌우모지 요조숙녀 종고낙지


꾸륵꾸륵 물수리는 황하 섬가에서 우는데

얌전한 아가씨 군자의 좋은 짝이라네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 찾고 저리 찾고

얌전한 아가씨를 자나깨나 구한다네

구하여도 얻지 못해 자나깨나 생각하니

그립고 그리워라 잠 못들어 뒤척이네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 뜯고 저리 뜯고

얌전한 아가씨를 비파 타며 사귄다네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저리 골라내고

얌전한 아가씨를 북을 치며 좋아하네


오래 전 중국의 사랑 시(민요)가 오늘날 우리의 감성을 적시기엔 역부족이겠지요. 우리가 이 대목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끌어와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먼저 시적 감수성입니다. 아무나 시를 쓸 수는 없지만 누구나 시를 읽을 수는 있지요. 시를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채우고 있는 대상들에 마음이 간다는 증거입니다. 좁은 자기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무한한 세계의 경이에 마음을 열어 두겠다는 의지의 발로입니다. 그래서 시를 읽는 사람은 악하기 어렵습니다. 법전 만을 세상을 보는 창문으로 삼고 자기 입맛에 맞게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 평소 시집을 가까이 두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공감 능력을 상실한 자들에게 법을 다룰 수 있는 자격이란 그저 사적 권력과 이익을 공고히 하는 수단에 불과할 뿐이지요. 뇌와 심장이 망가진 자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일은 어린 아이가 갖고 노는 성냥은 곧장 빼앗아야 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입니다. 


다음으로 감정의 절제입니다.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과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얘기입니다. 연애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것에 일상 생활이 영향을 받을 정도로 취하는 것은 좋기 어렵지요. 연애 상태에의 과몰입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희노애락의 소용돌이가 자신을 집어 삼키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중정中正'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할 것입니다.     


주역 31괘 택산함괘澤山咸卦는 남녀의 사랑에서 몸과 마음의 조화로운 감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몸은 양이고 마음은 음이지요. 따로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육체적 쾌락에 대한 무절제한 탐닉은 육체와 정신의 동시 파괴에 이르기 쉬우니 영혼을 살찌우는 정신 공부와 수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5월의 눈부신 신록을 밀어내고 다가올 또 하나의 잿빛의 시대, 슬픔과 분노가 우리의 심신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공자가 그토록 사랑했던 시를 우리도 가끔이나마 가슴으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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