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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ug 04. 2022

일상의 논어 <옹야雍也15>-호도戶道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자왈 수능출불유호 하막유사도야


-공자가 말했다. "누구인들 문을 통하지 않고 나갈 수 있는가? 어찌하여 이 도를 따르지 않는 것인가?"  



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통과하는 것이 상식이듯 본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공자의 인식이지요. 도는 천지의 도(天地之道)이기도 하고 인의 길(仁之道)이기도 할 것입니다. 안회가 실천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일 수도 있습니다. 공자는 과연 세태를 한탄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게는 인간 존재의 한계성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누군가는 문으로 출입하지 않고 담을 넘거나 굴을 파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지요. 공자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들 조차도 자신의 사상을 수용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 현실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사는 생활에 전념하느라 배워 깨우치는 일에 투여할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은 공자에게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다만 안타깝게 느껴졌겠지요.


물론 공자의 감정 토로의 대상은 위정자들과 식자층에 국한되었을 것입니다. 배워서 알고도 도에 반하는 행위를 일삼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저절로 뇌리에 맴돌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득도의 길을 걷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이지요. 비록 그런 사유가 사상적 줄기를 수립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동양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유는 향후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로 전개되지요.


물질의 세상에서 물질의 일부로서 존재하며 타 물질들과 끊임없이 접촉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물질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한 채 물질 너머의 정신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감각되지 않기에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는 물질적 현상을 목격할 때마다 초월자나 절대자의 개념을 끌어들여 미지의 영역의 주인으로 내세우는 것이 간편한 해결책이었을 것입니다. 서양 철학이 선택한 방법이었지요. 하지만 유가적 사유는 집요하게 현실 세계를 탐구하되 그곳에서는 구현될 수 없는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그렇게 되도록 실천하기를 종용했지요. 안회와 같은 인물이 대표적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서양적 인간의 자리에 하늘을 닮은 동양적 인간을 세운 것이지요. 인의 길을 걸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공자 스스로 설정해 둔 인자仁者의 조건은 지나치게 높았습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도전하고자 하는 의욕이 꺾이고 말지요. 어차피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위치하는 신을 향해 엎드려 경배하는 서양적 방식이 인간으로서 따라하기 수월하지요.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첨탑 위의 십자가들이 이를 잘 설명해 줍니다. 


<<주역>> 공부를 통해 인간과 이어진 하늘의 실체를 인지했음에도 공자는 이에 대한 가르침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공야장> 편 12장에서 본 바 있지요(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자공왈 부자지문장 가득이문야 부자지언성여천도 불가득이문야 - 자공이 말했다. "스승님의 문장은 얻어들을 수 있었지만 스승께서 성과 천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얻어들을 수 없었다"). 그가 남긴 말대로 깨달음의 깊이를 더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子曰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자왈 가아수년 오십이학역 가이무대과의 - 공자가 말했다. "나에게 몇 년의 시간이 주어져 쉰 살에 했던 것처럼 역을 공부할 수 있다면 큰 허물은 없을 텐데..."), 훗날 <술이> 편에서 논란 많은 이 대목을 다시 설명하겠지만 참고로 간단히 언급하면 대과大過는 주역 28괘 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와 관련 있다고 저는 봅니다. 택풍대과괘의 <대상전>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澤滅木 大過 君子以 獨立不懼 遯世无悶 상왈 택멸목 대과 군자이 독립불구 돈세무민 - 연못이 나무를 멸함이 크게 지나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홀로 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멀리해도 번민하지 않는다.' '독립불구'와 '돈세무민'의 경지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자조적인 심정이 논어에 암호처럼 담긴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논어는 물론 다른 텍스트에 공자가 주역을 공부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 공자가 주역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공자와 주역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공자와 주역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근거들은 애써 무시하지요. 저는 복희씨, 문왕, 주공, 공자를 거치며 내려온 시대를 초월한 사유의 종합인 주역의 위치를 역사와 신화의 중간 정도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유가가 도가 등의 다른 동양 철학 유파들을 제치고 우월적 지위를 누린 결정적 이유는 유가의 현실 지향적 성격과 공자 제자들의 기록 정신이지요. 논어에는 분명한 집필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일생을 바쳤던 학문의 길이 헛되지 않기를, 유의미하게 역사에 남고 후대에 전승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신비주의적 요소를 개입시킬 수는 없었겠지요. 그럼에도 중요한 키워드들을 삽입해 둠으로써 추리의 여지와 사유의 재미를 남겨 두었습니다.    


한탄은 성인의 자세와는 어울리지 않지요. 위 구절을 그렇게 읽지 않은 까닭입니다. 우리 사회 체제의 모순과 인간 군상의 욕망이 폭발하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탄식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가 아무리 명백하다 할지라도 인간은 인간 이하로 전락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용납하면 우리 사회는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이니까요.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전성시대는 그래서 하루속히 끝장내야 합니다. 그들이 먼저 이 나라를 작살내기 전에 말이지요. "어찌하여 이 도를 따르지 않는 것인가?", 공자 할애비가 와서 훈계한다고 해도 이들은 귓구녕에 말뚝을 박을지언정 마음을 바꿀 인간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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