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Aug 15. 2022

일상의 논어 <옹야雍也24>-정유인井有仁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 井有仁焉 其從之也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재아문왈 인자 수고지왈 정유인언 기종지야  자왈 하위기연야 군자가서야 불가함야 가사야 불가망야


-재아가 물었다. "인자에게 누군가 알려 말하기를 "우물에 인이 있도다"라고 하면 그 말을 따릅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찌 그렇게 하겠느냐? 군자를 죽일 수는 있어도 함정에 빠뜨릴 수는 없다. 속일 수는 있어도 사리 판단에 어둡게 할 수는 없다."



재아는 앞에서 재아와 재여로 등장했던 제자이지요. 그가 하는 질문은 그의 개념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위 구절도 그의 이런 면모를 보여 주지요.


雖는 수誰(누구, 누군가)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인자는 어진 사람일 뿐만 아니라 늘 인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지요. 재아에게는 인자가 인에 미쳐서 항상 더 높은 수준의 인을 찾아 헤매는 사람 정도로 보였나 봅니다. 우물에 인이 있다고 하면 앞뒤 재지 않고 우물 속이라도 들어가는 존재 말입니다. 


우물은 어두운 곳입니다. 세상의 지식, 지혜와 단절되어 있는 장소이지요. 좌정관천坐井觀天이 상징하듯 소견이 좁거나 음습한 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삶의 영역이나 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한 은유입니다. 그런 곳에 인이 있을 턱이 없지요. 재아는 스승이 최고로 치는 가치인 인에 대해 무지한 것이며,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이 난해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비유를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4대강에 보를 설치하면 홍수를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질도 깨끗해진다', '대기업이나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 주면 실질적 혜택은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가치 없는 국유 부동산들을 처분하여 민간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 '경쟁력 없는 공공 부문을 개혁하여 시장을 활성화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 등과 같은 개소리들에는 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들려서 처음에는 '진짜 그런가?' 하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자는 금방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불인한 자들은 개소리들에 메아리를 더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세뇌시키는데 앞장섭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는 데는 도가 튼 자들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인자들은 죽으면 죽었지 그런 더러운 꼼수에는 동조하지 않습니다. 밥줄이 끊기고 사돈에 팔촌까지 압수 수색을 당할지라도 양심에 따른 자신의 의견을 고수합니다. 


재아는 쓰레기 같은 질문을 한 것입니다. '스승님, 사실 인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명예가 깎이지 않도록 적당히 명분을 만들어 주고 포장해 주기만 하면 인하지 않은 일인 것을 알면서도 은근슬쩍 다 끼어드는 것 아닙니까? 인간은 다 돈을 추구하잖아요?', 재아는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정유인井有仁焉'의 인仁을 인人으로 보고 '우물에 사람이 빠졌다고 해도 인자는 위태로운 처지의 사람을 구함으로써 높아질 자신의 명예라는 이익을 생각해 무조건 들어가는 수준의 사람이 아니다'의 뉘앙스로 흔히 위 구절을 해석합니다. 하지만 멀쩡한 인仁을 인人으로 바꿀 이유가 없지요. 있는 그대로 인仁으로 볼 때 내용이 더 깊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논어 <옹야雍也23>-고불고觚不觚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