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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ug 16. 2022

일상의 논어 <옹야雍也25>-박문약례博文約禮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자왈 군자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공자가 말했다. "군자란 문에 박학하되 예로써 그것을 단속할 때 어긋나지 않으리라." 



이 구절은 <안연顔淵> 편 15장에서 고스란히 반복됩니다. <자한子罕> 편 10장에는 '박아이문 약아이례 博我以文 約我以禮 - 문으로 우리를 넓혀 주시고 예로 우리를 단속하신다'라는 안회의 말이 있습니다. 


공자에 따르면 군자가 되려면 일단 많이 배워서 아는 것이 풍부해야 합니다. 배움이 적어 무식하면 세상의 일을 통찰할 수 없지요. 현상을 한정된 경험 만으로 진단, 분석하니 엉뚱한 처방을 내놓는 일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지식의 양이 더 나은 사람을 만드는 절대적 지표는 아닙니다. 특히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오늘날의 학문하는 방식은 타 분야에 대해 무지한 헛똑똑이들과 곡학아세하는 무리들을 양산하기 쉽지요. 국한된 전문 지식은 주관적 경험만큼이나 위험합니다. 자신의 지식을 진리로 과신하는 것은 마치 해안가 휴양지 리조트에서 자기 방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바다의 풍경을 그 바다의 전부라고 인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위정> 편 17장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자왈 유 회녀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팔일> 편 15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자입태묘 매사문 혹왈 숙위추인지자지례호 입태묘 매사문 자문지왈 시례야 - 공자는 태묘에 들어갈 때 매사를 물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누가 추인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했냐? 태묘에 들어가서는 일마다 다 묻더라."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그것이 예이다."'


이제 우리는 위 구절을 통해 공자가 하고자 하는 조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두루 많이 공부하여 지식을 쌓아라. 하지만 현장과 괴리된 지식은 죽은 것이다. 현실을 통찰하지 못하는 지식도 죽은 것이다. 안다는 것이 실상 얼마나 볼품 없는 것인지 깨달아 티끌 같은 앎을 내세워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도록 늘 삼가라', 이 정도가 되겠지요. 


진리를 추구한다는 대학의 학문 정신이란 기껏해야 권력 앞에서 굴종하는 나약하고 천박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대학大學이 아니라 대학貸學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학위라는 껍데기를 탐하는 자나 그것의 권위에 기대어 명예를 누렸으나 정작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줄도 모르는 대학이나 한심하긴 매한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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