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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Sep 03.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13>-부지육미不知肉味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자재제문소 삼월부지육미 왈 부도위락지지어사야


-스승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 소를 들으신 후 석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시고는 말씀하셨다. "음악이 이런 경지에 이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공자孔子 대신 자子로만 쓰일 때는 부자夫子로 보아 제자가 직접 한 말처럼 존칭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팔일> 편 25장에서 소에 대해 '미의 극치뿐만 아니라 선의 극치에 도달했다(진미의 우진선야 盡美矣 又盡善也)'고 평한 바 있었지요. 소가 얼마나 대단한 음악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순임금 시대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도달한 수준이 지극히 높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팔일> 편 25장에서 상세히 얘기한 바 있습니다. (참고: https://brunch.co.kr/@ornard/884)


소를 들은 공자는 칸트가 숭고미라고 지칭했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상황으로 보입니다. 특정 대상에 완전히 몰입한 사람은 그 외의 것에 대해 망각하는 법이지요. 사랑하는 연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밀어를 속삭이는 순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념무상에 들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자주 이런 경험들로 채워져야 합니다. 넋을 잃고 대상과 세계에 심취할 때 우리는 생각과 말을 잊은 채 온몸으로 그것들과 교감하게 됩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경직, 흥분과 고조, 그리고 정화와 고요의 과정을 생생하게 감각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것과 정직하게 대면하게 됩니다. 자신을 압도하는 사람과 세계와의 만남이 늦어질수록 우리의 각성은 그만큼 늦어지고 말지요. 각성은 우리로 하여금 '종오소호'하게 해줍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현재를 개혁할 근거를 확보하게 해주지요. 공자에게 소가 불러 일으킨 그 각성을 우리도 우리 각자의 것의 발견을 통해 삶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겠습니다. 


다만 때로 어떤 각성은 과거의 대상을 현재화함으로써만 달성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대상의 발견이라는 또 다른 집착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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