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것이 설레지만 두려웠던 이유

핑계 없는 하루를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by 유메이
Q.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인가요?
A. 가을과 여름 사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여름과 가을이 잠깐 만나 서로의 따뜻함과 선선함을 공유하는 그때가 1년 중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10년 전에는 이 시간이 제법 길게 느껴졌는데 그 사이 내가 변한 건지 아니면 세상이 변한 건지 최근 몇 년 동안은 길면 한 달, 짧으면 일주일 만에 가을이 성큼 다가와버리고는 했다.


지난주 태풍과 비가 요란스럽게 지나가고 난 뒤 시원한 바람이 코 끝을 스치기 시작했다.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하늘이 조금 더 높고 푸르게 보이는 것 같아 달력을 보니 얼마 전 ‘처서’가 지나갔다. 어느새 가을이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서 2021. 8. 23.
24절기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처서는 양력 8월 23일 무렵에 든다.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매년 이맘때에는 가을을 맞이하는 기쁨에 설레었을 텐데 올해는 이상하리만큼 가을이 오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솔직히 나는 가을이 오는 게 두려웠다.





휴직을 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출근하지 않고 본업에서 잠시 멀어져 있기는 했지만 1년 동안 내 몸은 전혀 쉬지 못했다. 이제 막 돌을 지난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행복했지만 가끔 아니 솔직히 조금 많이 힘들기도 했다. 힘들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행복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너를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 세상이 온통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제대로 씻지도 못해 매일 질끈 묶고 있는 머리를 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출근이 그립기도 했다. 너는 무럭무럭 자라고 나는 이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지는 동안,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2021년의 가을이 어느덧 성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가을과 함께 나의 복직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2020년의 가을도, 2021년의 가을도
모두 다 같은 가을인데
왜 유독 2021년의 가을이
낯설게 느껴졌을까?


짧은 휴가 동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알게 된 사실은 나와 가을을 멀어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 듯 어느덧 돌아갈 때가 되었을 뿐인데 ‘복직하고 나서도 미라클 모닝 같은 나만의 습관을 유지하면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의 한계를 만들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매년 변치 않고 찾아와 준 고마운 가을이 오는 게 막연히 두려웠던 것이다. 가을은 평소처럼 계절에 흐름에 맞춰 내 곁에 있어주려고 했을 뿐, 아무 죄가 없었다.




복직이 뭐 별건가.
복직한다고 변할 건 아무것도 없잖아?
시간이 부족하면 시간을 만들면 되고 체력이 부족하면 체력을 기르면 되지.


​신기하게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냥 싫기만 했던 복직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불안하고 불편했던 마음도 어딘지 모르게 한결 가벼워졌다. 내 마음은 다시 가을이 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내 인생에게 핑계 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는 복직을 핑계로 가을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회사를 핑계로 꿈꾸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긴 호흡으로 나만의 길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나아가야겠다.


초록으로 반짝이던 잎사귀들이 빨갛고 노랗게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오늘은 나의 옷장을 카키, 버건디, 베이지, 브라운처럼 차분한 색상들로 가득 채워봐야겠다. 곧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을이 올 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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