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Oct 27. 2022

치명적인 뒷담화의 매혹

누가 내 험담를 하는 건 아닐까?

어느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 4명의 직원이 있다. 퇴근 후 함께 회식하기로 했다. 그중 한 명이 사정이 있어서 조금 늦는다. 3명이 먼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취기가 오르자 자연스레 늦게 오는 직원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세 사람은 평소 갖고 있던 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뒷담화가 시작된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 직원이 왔다. 그 순간 그들의 뒷담화는 뚝 하고 끊긴다.       


4명 중 한 사람이 집에 일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뜬다. 술이 몇 잔 돌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간 사람을 화제의 중심으로 소환한다. 신나게 그 사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됐다. 그렇게 뒷담화로 새벽이슬 맞을 때까지 술을 마신다. 사정이 이러니 성격이 예민한 사람은 누가 자기 뒷담화할까 봐 화장실도 안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터넷으로 뒷담화를 검색하면, ‘담화(談話)와 우리말의 뒤(後)가 합쳐져 생긴 말로 소개한다. 보통 남이 없는 곳에서 사람을 헐뜯는 행위나 말을 뜻한다. 뒷담화라는 말에는 좋은 의미보다 나쁜 의미가 담겼다. 안타깝게도 해가 되지 않는 뒷담화는 그리 많지 않다. 구설에 오른다고 말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대상이 되는 사람은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평소 뒷담화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잘 찾기 힘들다. 어지간한 성인군자나 심지 굳은 사람이 아니면 뒷담화를 멀리하기 어렵다. 여러 사람이 모여 누군가 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일이 자주 있다. 평소 말과 행동에 문제가 많은 사람이면 더 자주 뒷담화에 오른다. 타인에게 치명적인 해가 되지 않는다면 적절한 뒷담화는 함께하는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든다. 심지어 동지라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대화의 소재가 된다.

     

소통의 수단 뒷담화

인간은 무리 지어 살아야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대화하고 정보를 나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인간의 뛰어난 발명품이 언어다. 언어로 전달할 중요한 정보는 사자나 들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유발 하라리 교수는 말한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는 개인이 무리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하는지 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유발 하라리 교수에 따르면, 모든 유인원은 사회적 정보에 예리한 관심을 나타내지만, 아직 효율적으로 소문을 공유할 수단이 부족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하려면 꼭 필요하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사피엔스는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

     

통신 미디어가 발달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작 140여 년 전에 사람들은 전화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직접 만나거나 아니면 편지를 써서 소통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소통 수단은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대화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화제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다른 사람에 대한 뒷담화가 끼어들게 마련이다.


한 입 주는 즐거움과 뒷담화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간은 배고픔을 완전히 해결하는 기술 진보를 달성한 적이 없다. 늘 소수의 배부른 지배자와 다수의 배고픈 사람들이 존재했다. 소수의 배부른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곡식을 뺏기지 않고 더 부풀리기 위해 고민했다. 배고픈 사람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방법은 경쟁자를 물리치는 것이다. 경쟁자가 적을수록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쟁 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경제적 목적으로도 뒷담화를 활용했다.   


Knox College 심리학과 교수 프랭크 맥앤드류(Frank McAndrew)를 중심으로 한 진화심리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선사 시대 뇌의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조상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집단으로 살았다. 적을 물리치고 혹독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은 그룹 구성원들과 협력해야 했다. 동시에 구성원들은 제한적 제한을 둘러싼 경쟁자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은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이 과정에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뒷담화를 활용했고, 이런 유전자가 이어지면서 뒷담화가 우리의 뇌에 새겨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수백만 년 동안 타인을 물리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그래서 뒷담화의 매력을 벗어나기 힘들다. 더구나 뒷담화를 통해 타인을 물리치는 즐거움을 맛본 우리 뇌는 쾌락 물질에 중독된다. 자리에 없는 사람을 공격하고 씹는 즐거움이 주는 매력을 버리기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진화의 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즐거움을 구경할 수 없었던 인류의 즐거운 가운데 하나가 타인을 씹는 쫄깃함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경쟁에서 탈락시키면 내게 돌아오는 몫이 커진다. 더 많은 식량을 얻고 심지어 이성을 쟁취하는 데도 유리해진다. 타인을 제거하려는 뒷담화는 즐거움을 주고 쾌락의 도파민을 솟아나게 해 준다. 도파민의 쾌락에는 늘 중독성이 따르고, 더 큰 자극이 있어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뒷담회의 횟수를 늘리거나 더 자극적인 뒷담화를 하는 것이다. 뒷담화가 습관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점차 뒷담화에 중독되고 사람만 만나면 남 이야기를 한다.


칭찬하는 뒷담화는 없을까?

안타까운 사실은 해가 되지 않는 뒷담화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화의 주인공이 실제로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이 찢기게 된다. 흔히 구설에 오른다고 말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뒷담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경쟁적으로 상대에 대한 느낌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는 실제보다 과장되기 일쑤다. 이때부터 뒷담화는 착함을 벗어나 대상을 공격하는 수단이 된다. 이 과장에서 치명적인 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대상자는 온갖 구설에 올라 괴로움을 당한다. 단순히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을 해하는 뒷담화로 변한다.     


칭찬만 하고 좋은 이야기만 하고 나쁜 이야기를 일절 언급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있는 사람들끼리는 격론을 벌이더라도 없는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최대한 예의를 차린다면 뒷담화는 아무 탈이 없다. 오히려 뒷담화를 권장하고 장려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는 마지못해 칭찬하거나 아무 말 않다가도 막상 그 사람이 없을 때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이때 공적인 대화 못지않게 사적으로 나누는 대화도 필요하다. 사석에서 친한 사람에게 고민을 터놓는 일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완화해준다. 또 전화나 SNS로 나눌 수 없는 정보를 교환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이야기를 삼가야 한다. 뒷담화를 완전히 없애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뒷담화의 순기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것이 고민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은 변하고, 사람은 고쳐 쓸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