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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7. 2022

그놈의 '욱'하는 성질을 죽여야지

'욱'하는 성질 때문에 주위의 신뢰를 잃다.

그는 결단력, 인내, 절제를 갖추었다. 청렴하고 강직하다. 게다가 정의감에 불타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또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지고지순하기까지 하다.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일하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머리도 비상해서 판단력과 순발력까지 겸비했다. 한마디 입 댈 게 없는 훌륭한 리더다. 

  

이런 사람을 지도자로 모시면 얼마나 좋을까. 회사와 조직이 잘 돌아갈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의욕이 산을 이룬다. 무얼 하든 이루지 못할 게 없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돌아봐도 이런 훌륭한 지도자는 흔치 않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이런 리더가 이끌면 참 좋겠다.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한 가지 결정적인 흠이 있다 한 번씩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한다. 성격은 다혈질에 흥분을 잘하고 조급하다. 게다가 직선적이어서 주위의 뛰어난 참모들에게도 질타와 욕설을 퍼붓는다. 심지어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잘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의 스승이라고 착각한다. 그는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참모들을 막 대하다 신뢰를 잃었다.      


“이 XX는 눈치만 살살 보며 숨어 있네. 진짜 개 XX(호래자식)이네. 안타깝다. 요즘 하는 꼴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하고 자신의 측근을 욕했다. "당신도 머리가 허연 영감탱이가 다 됐네. 높은 자리에 있고 내 신임도 두터우니 좋지. 그런데 매번 그 입을 촉새처럼 놀려서 문젯거리를 만드는구나. 그대는 아무 생각 없는 꼴통 영감탱이다. 너무너무 답답하다. “하고 또 다른 측근인 원로에게 막말을 퍼붓는다.    

   

실제로 있었던 인물 이야기다. 과거형 어법을 사용했으니 현존하는 인물은 아니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훌륭한 인물이다. 누구일까? 놀랍게도 그는 정조 대왕이다. 


정조 대왕은 조선 후기의 중흥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이 자자하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의 군주이자 결단과 카리스마의 군주로 알려졌다. 또 아는 게 많아 박학다식한 것으로 따지면 세종 대왕에 버금간다. 역사, 철학, 과학까지 지식을 두루 섭렵한 ‘학자’의 이미지를 갖춘 군주다. 정조 대왕도 자신이 대학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또 진정으로 백성의 아픔을 달래려 노력한 훌륭한 지도자다.      


태양증(太陽症)이 있어 부딪히면 바로 폭발한다.

정조 대왕의 아버지는 사도세자다. 할아버지 영조 대왕의 카리스마에 짓눌려 정신 파탄을 일으킨 비운의 황태자다. 영조 대왕의 엄격한 교육과 지나친 통제로 정신 줄을 놓아버린 사도세자는 결국 뒤주에 갇혀 죽었다.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어린 정조는 자신의 속내를 철저히 숨기며 인내했다. 정조 대왕의 참을성과 인내심은 가히 상상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강인하다.     


정조 대왕은 학식도 높고, 백성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정성이다. 신하들과 정책 토론하기를 즐겼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면만 보면 정조 대왕은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정조는 스스로 ‘태양증’을 가졌다고 말할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다. 불같이 화를 내면서 측근들에게 심한 상처를 주고 모욕했다.        


“나는 태양증(太陽症)이 있어 부딪히면 바로 폭발한다”라고 영의정을 지낸 심환지에게 고백했다. 훗날 아들 순조의 장인이 되는 김조순에게는 “옳지 못한 일을 보면 바로 화가 치밀어 얼굴과 말에 나타난다. 아무리 억누르려고 애를 써도 고치기 어렵다”하고 토로했다. 그렇게 똑똑하고 차분하고 인내심 강한 영조 대왕도 ‘욱’하고 폭발하는 성격 때문에 고민이 참 많았다. 


정조 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왕으로 즉위할 때까지 철저하게 숨죽이며 살았다. 할아버지 영조와 자신을 반대하는 원로 신하들에게 들킬까 봐 개혁의 발톱을 꼭꼭 숨겼다. 왕권을 잡는 그날까지 절치부심(切齒腐心) 했다. 그는 '욱'하는 성질을 숨기고, 끝내 왕권을 잡았다. 

   

'욱'하는 성질을 죽였더라면

조선 오백 년 동안 27명의 왕이 등극했다. 그 가운데서 정조 대왕은 세종 대왕의  뒤를 잇는다는 칭송을 받는다. 학식, 카리스마, 인내, 절제, 비상한 머리 등 어느 하나 빼놓고 이야기할 것이 없다. 그건 그가 욱하는 성격으로 측근들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정조가 성질을 죽이고 신하들을 존중했으면 어땠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고, 우리 인생도 한 번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다. 안타깝다. 그러니 참고 인내하고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 


용기와 의지를 갖춘 지도자가 타인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야말로 무결점의 지도자다. 부하의 실수를 차분하게 타이르고 화가 치솟아도 내색하지 않는다면 지도자의 자질로 부족한 게 뭐 있까.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까지 갖춘 지도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게 안 된다면, 정조 대왕처럼 권력을 잡을 때까지는 '욱'하는 성질을 숨길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소개한 정조 대왕 이야기는 노혜경 교수가 동아비즈니스 포럼에서 발표한 자료를 참고했다. 노 교수의 논문 “조급증에 다혈질 ‘막말 대왕’ 정조 "꼴통 늙은이" 운운 신하 막 대하다 신뢰 잃다”에 보면 정조의 막말이 잘 나와 있다. 그것을 현대적인 문체로 바꿨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정조 대왕이 측근 신하들에 내뱉은 잔인한 말들이 심한 상처가 됐을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극단적인 말은 삼가야 한다. 100번을 잘해줘도 단 한 번의 비난에 크게 낙심하고 상처받는 것이 사람이다. 인간의 마음은 단단한 것 같으면서도 여린 구석이 많다. 주군을 모신 측근들은 늘 상처받을 각오가 돼 있다. 


"士爲知己者死(사위지기자사,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女爲說己者容(여위열기자용,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고친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한 말이다. 중국의 사마천이 쓴 불후의 명저『사기(史記)』의 <자객열전>에 나온다. 그렇지만, 거기에도 마지막 경계선은 있다. 그 선을 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욱’하고 화가 나더라도 가까운 사람을 마음의 지평선까지 몰아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의 지평선 너머에는 사람이 돌변하는 특이점(Singularity)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몸의 상처야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두고두고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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