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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7. 2022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값은 내야 하지 않을까?


적자생존이 아니라 협자생존이라면?

자연환경에 잘 적응한 생명체는 살아남아 진화를 거듭했다. 오늘날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적응해서 살아남은 종(種)이다. 반대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는 도태되었다. 혹독한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다른 종과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패배한 생명체는 사라졌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았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다. 


우리는 적자생존은 과거나 현재 또 미래까지 생명체를 보존하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라 믿는다. 적자생존 능력이 없는 생명체는 지구에서 사라지고 멸종된다는 것은 우리의 신념이다.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법칙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원리가 되었다. 경쟁과 승리를 통해 살아남아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 핵심 정신이다. 우리는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자신을 채찍질하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다. 


능력주의는 적자생존의 원리와 뿌리가 같다. 이기고 적응하는 자가 능력자가 된다. 경쟁에서 지거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자는 무능력자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무능력자는 도태된다. 그렇게 되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국가에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복지를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소멸을 막는다. 협자생존(協者生存)의 원리가 아니라 적자생존의 원리에 기초해서 경쟁에서 탈락하는 부적응자를 살려두는 것이다. 


오늘날 생명체가 살아남아 진화를 거듭한 까닭이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의 원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만일 다윈의 적자생존을 통한 진화론이 틀린 이론이라면 우리가 굳게 믿는 승자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질 수 있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협조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협자생존(協者生存)이 진화에 도움이 되었다면 자본주의 기본 이념을 경쟁에서 협조로 바꿔야 할 것이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 것이 아니라 협조를 위해 밤샌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의 도덕률과 신념이 적자생존이 아니라 협자생존이라면 능력 제일주의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1%의 능력 차이가 100% 다 차지한다?

이긴 자는 능력자고, 능력자가 다 가져가는 사회가 됐다. 지는 사람에게는 국물이라곤 없다. 승자와 패자 사이에 무슨 그런 대단한 실력 차이가 날까? 아슬아슬하게 패한 자에게 결과는 너무 가혹하다. 인터넷의 발달은 최고는 아니지만, 재능 있는 사람의 설 자리를 뺏었다. 게다가 스마트 폰 등 무선 통신 기술의 발달은 내가 어디에 있든 세계 최고와 겨루게 한다. 이제 어떤 산업에서도 몇 사람의 승자만 있으면 된다.


신기술의 발달로 세상의 많은 작은 시장이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통합됐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수많은 구매자가 한 명의 승자에게 지갑을 연다. 과거 작은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문학적 액수다. 파이가 놀라울 만큼 커졌다. 기술은 승자에 너무 많은 보상을 가져다주게 했다. 능력 제일주의의 승자독식 시장에서는 단 1%의 실력 차이가 수익의 100%를 가져간다. 실력이 0.1% 부족해서 패자가 되는 순간, 시장에서 쫓겨나고 한 푼도 벌 수 없게 된다. 능력 제일주의의 승자독식 시장은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하다. 


인기 배우 몇 사람, 인기 가수 몇 사람, 베스트셀러 작가 몇 사람은 시장의 파이를 대부분 가져간다. 특히 자본주의의 본산이 영국과 미국의 스포츠 스타의 몸값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땀 흘려도 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에게 돌아올 몫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왜냐하면, 몇 사람의 승자가 독식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우연히 획득한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갖는 시대가 됐다. 


이들이 조금 나은 실력으로 과실을 전부 갖는 분배 시스템이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이것이 샌델이 롤스의 ‘정의론’에 입각해서 던지는 이야기의 주제다. 승자는 능력으로 이겼고, 그래서 내가 다 가지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할 수 있다. 제도와 법칙은 사람이 만든다. 능력자가 다 가지는 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원칙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엽기적인 불공정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협자생존’의 원리를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값은 내야 하지 않을까? 

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한 사람인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통해 우주의 별들은 서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신의 영역인 하늘의 운동 법칙을 인간의 눈으로 해석할 수 있게 했다. 뉴턴 덕분에 사람들은 감히 넘볼 수 없었던 광활한 우주의 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게 됐다. 그는 별과 물체의 운동 법칙을 밝힘으로써 근대 물리학의 창시자를 칭호를 얻었고,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 뉴턴도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축적한 지식과 역량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들과 중세의 신학자들 그리고 르네상스의 학자들 덕분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유클리드, 갈릴레이 갈릴레오, 데카르트 등 셀 수 없는 천재들이 축적한 지식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의 지혜가 없었더라면 뉴턴 혼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위대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랐기에 더 멀리 보았다. 


어떤 새로운 이론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 쌓아놓은 지식을 기반으로 자기 생각을 덧붙여 만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문명도 그러하다. 앞에서 예를 든 아이도, 빌 게이츠도 앞선 사람이 축적해 놓은 기술을 익히고 배워 자기 기술을 만들었다. 앞선 천재가 단단하게 다져놓은 축적의 시간 위에 새로운 성과가 발현한다. 세상의 모든 성공은 거인들의 어깨를 빌렸기에 가능했다. 하늘 아래 온전히 새것이라곤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누구라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값은 내야 하지 않을까? 거인들이 어깨를 빌려주지 않았다면 아무도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오직 내가 잘나서 내 힘만으로 성공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무모한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고민을 해볼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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